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8.21 20:23

"밀려오는 관세장벽에 국제법 호소이전 소비부터 살릴 방도 찾아야"

미국 상무부가 지난 7월과 이달들어 두차례 한국에서 수출하는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사진제공=SK네트웍스홈페이지>

[뉴스웍스=한동수기자] 구조조정, 수출감소, 불황형교역흑자, 소비절벽...올해 초부터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경제 이슈들이다. 

기업은 수출 감소로 투자에 소극적이다. 부실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가계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국외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한 층 더 냉혹하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상무부는 한국의 철강, 화학 등 일부 품목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신흥 수출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까지 반덤핑 관세 부과대열에 합류할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소비는 위축되고 일자리에 대한 불안과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은 19개월째 감소세다. 여기에 미국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베일을 벗어던진채 제 모습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철강이어 화학까지 美 보호무역...세계 각국으로 확대

미 상무부는 지난달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냉연강판에 각각 64.7%, 38.2%의 관세율 부과하기로 한데 이어 이달들어선 열연강판에도 각각 60.93%, 13.38%의 관세를 반덤핑 관세와 상계 관세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對)미국 철강 수출은 포스코가 연간 6000억원, 현대제철이 2000억원 정도 규모다. 관세장벽이 생길 경우 이들 기업은 수천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관세를 내야하는 상황에 몰렸다. 문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다른 업종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료제공=코트라>

지난 18일 코트라(KOTRA) 워싱턴무역관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최근 미국 화학업체 이스트맨 케미칼 컴퍼니가 한국산 가소제(DOTP) 생산업체 3곳(LG화학·한화케미칼·애경유화)을 상대로 제기한 반덤핑 제소 예비조사에서 미국산업의 피해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제소업체는 한국산 DOTP에 23.70~47.86%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미국 상무부는 이번 ITC의 판결을 토대로 반덤핑 조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최종 판정은 내년 2월께 발표된다. 이를 두고 1차세계대전이후 유럽, 미국 등 세계열강이 보였던 보호무역주의와 신고립주의가 재가동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자료제공=코트라>

국제법은 과연 우리 편일까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대상기업들은 WTO(세계무역기구)와 GATT(관세 및 무역에관한 일반협정) 그리고 관세부과국 무역법원 제소 등을 내놓고 있다.

지난 18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우리 정부는 보호무역주의와 신고립주의 극복을 이끌어나가는 선도국가를 지향해 나가겠다"고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밝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사진=유튜브캡쳐>

그는 또 "앞으로 예정된 양자·다자 정상외교와 부처별 고위급 회의를 활용해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를 배격해 나가겠다"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선진국의 통화정책 결정, 미국 대선과정 등에서 보호무역과 자국 중심적 정책이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21세기 안보는 군사만이 아니다. 경제안보가 국가의 이익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과 유럽은 1930년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이미 세계 경찰국가로써의 지위를 잠시 내려 놓으려하고 있다. 경제를 제대로 살려놓지 않고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느 쪽이 집권을 하든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지금보다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단 미국은 미국 경제가 최우선으로 우선 순위에 변화가 오고 있다. 유럽은 유럽경제가 일본은 일본 경제가 최우선으로 삼는 블랙홀로 이 시대가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 한국 기업과 정부의 대응책은 세계 협정과 조약 등을 최대한 활용 설득하고 유리하게 합의해 나가겠다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그들이 국제법을 만들었다

우리 정부가 의지하려는 WTO나 GATT역시 미국을 비롯한 패권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구들이다. 

국제기구의 가장 큰 모순은 무정부상태와 같다는 것이다. 협약을 어길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만약 있다면 군사력뿐이다. 그래서 강대국이 국제협약을 어겼을 경우 약소국은 당할 수밖에 없다.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위대했고 ‘하면된다’는 신념 타령만 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사를 보더라도 국제기구와 협정, 조약들이 자국의 이익실현을 위해 휴지 조각이된 예는 많다. 패권국가들의 편익을 위해 마련된 국제협정에 대해 과도한 신뢰는 위험하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 인도로 이어지는 각 나라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타개책이 ▲국제협약 준수 요구 ▲한국의 문을 활짝여는 코렌터(KORENTER‧Korea Enter)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법을 믿기 보다, 소비 활성화를 통한 내수진작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나와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 소비절벽 해결없이 보호무역 파고 못넘어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지난 주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회원국 가계저축률 보고서는 심각하다.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가계저축률이 5위를 기록했다는 보고서다.

제목만 보면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다.

지난달까지 19개월 연속 수출감소가 발생한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내수가 활성화돼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데 한국의 가계 저축률은 가구당 소득의 8.66%수준이었다.

가계 저축률이 늘어나는것은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물론 저축률이 늘어나면 기업에 자금이 유입돼 투자로 이어질 경우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의 경우 현재 현금보유액만 700조원을 돌파했다. 투자할 곳이 없는 것이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계저축률 상승이 기업으로 투입돼 선순환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 "보호무역 더 심화될 수 있어”..."내수진작위한 근본대책 수립해야"

내수진작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미국과 주요국의 보호무역과 신고립주의가 확대될 경우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은 내수진작 이외에 뚜렷한 방책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잠시 미뤄야 한다.

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탈퇴)결정이후 유럽 경기가 안정될 때까지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점차 더 심화될 수 있다. 미국은 경제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보다 적극적인 보호무역주의를 과감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동북아지형을 신(新)냉전체제로 끌고가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내 사드배치를 서두르는 이유도 이런 외교정책의 일환일 수 있다.

미국이 당분간 자국의 경제적 이익실현을 위해 고립주의를 택하는 신현실주의적 외교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 경우 군사안보는 냉전체제가 가장 합리적인 평화체제이기 때문이다.

최위정 동국대 정치학과 객원교수는 “동북아시아 평화유지가 한‧미‧일 동맹을 축으로 일본의 지위가 강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미국은 당분간 경제적으로 고립주의, 정치적으로 신현실주의(Neo realisme)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크고, 신냉전체제 구축이 가장 합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 상무부도 미국과 일본에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 등 경제 보복 조치를 천명했다. 점차 동북아시아에 신냉전체제로 전환할 변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고 그 사이에 한국이 끼어있다.     

한국이 올 초부터라도 이런 주요 관련국들의 외교정책 변화를 감안해 여러 변수들을 지렛대로 활용했다면, 미국이 한국 철강이나 화학업종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 등 강경한 보호무역 움직임을 쉽게 실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한국이 미국에 대해 손에든 카드는 많지 않다. 사드배치가 완료될 경우 중국에 대한 카드 수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내수진작을 위한 근본적이고 과감한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막상 전세계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됐을 때 기업들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정책당국은 이 같은 여러 경우의 수를 세밀히 분석하고 마땅한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한반도 주변국의 움직임이 경제는 물론 군사부문까지 동시에 심상치 않았던 경우가 과거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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