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22 15:11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주제로 그린 중국 그림이다. 복숭아꽃 만개한 곳을 세속의 풍진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상향으로 묘사한 글이다.

장천리(長川里)와 독각리(獨脚里)라는 두 마을의 일부씩을 합쳐 만든 마을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었던 모양이다. 1946년에 정식으로 도원(桃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이름은 운치가 있다. 우선 중국 동진(東晋 317~420년) 때의 도연명(陶淵明)이라는 옛 시인이 남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이름을 땄으리라고 본다. 그 내용은 우리에게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무릉(武陵)이라는 곳에 살던 한 어부가 복숭아꽃 아름답게 핀 물길을 따라 갔다가 동굴 속에 사는 신비로운 사람들을 만난 뒤 헤어졌으나, 결국 그들의 자취를 다시는 찾지 못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신비로운 그곳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이상향, 가서 살고 싶은 곳, 다시는 갈 수 없는 곳 등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따라서 桃源(도원)이라고 적으면 그런 이상적인 땅을 일컫는 단어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아름답고, 이 험한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립기 짝이 없는 곳이니 桃源(도원)이라는 지명은 곳곳에 등장한다. 대구 근처에도 있고, 중국 각처에는 아주 많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거치는 이 도원역이 그런 이상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자세히 따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곳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심어져 지어진 이름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지나치게 깊숙이 끌고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떠난 한자 여행의 길에서 내실을 기하는 게 좋겠다. 이름의 桃源(도원) 앞 글자는 물론 복숭아를 일컫는다. 그 뒤의 글자는 샘이 솟는 그 뿌리, 즉 원천(源泉)을 가리키는 글자다. 여기서는 복숭아를 가리키는 桃(도)를 살피도록 하자.

붉은 복숭아가 홍도(紅桃)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1939년 동양극장이라는 곳에서 상영한 연극의 주제가 이름에 나온다. ‘홍도야 울지 마라’는 노래다. 그 주인공이 하필이면 紅桃(홍도)다. 뭔가 울림을 주는 이름이고, 실제 이야기 내용도 그렇다.

이 복숭아꽃은 정말 화사하고 예쁘다. 그래서 한자로 적는 복숭아꽃 桃花(도화)는 그냥 꽃 이름 말고 다른 의미도 있다. 예뻐서 아주 예뻐서, 그러다가 결국 화(禍)를 부른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남녀가 색정(色情)에 골몰해서 당하는 화를 이 복숭아꽃으로 푸는 경우가 있다. 동양에서 사람의 운명을 점칠 때 등장하는 도화살(桃花煞)이 바로 그 경우다.

그러나 꽃이 죄일 수는 없다. 그냥 예쁘다면 예쁜 게 죄다. 紅桃(홍도)는 복숭아의 색깔을 구분할 때 오히려 자주 쓰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황도(黃桃)와 백도(白桃)가 주를 이룬다. 둘 다 달콤하며 풍부한 물기 때문에 인기가 최고인 과일이다. 비슷한 종류로 천도(天桃)도 있다. <서유기(西遊記)>의 손오공(孫悟空)이 하늘 궁전 과수원에서 따먹은 그 과일의 이름을 땄다.

편도(扁桃)라는 열매도 있다. 터키가 원산지인데, 한자 이름으로는 잘 쓰지 않으나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열매다. 우리가 건강식품으로 애용하는 아몬드(Almond)다. 그러나 扁桃(편도)는 목구멍 양 옆으로 붙어 있는 납작한(扁) 복숭아(桃) 모양의 작은 림프 소절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가 목이 불편할 때 검사하는 편도선(扁桃腺)의 경우다.

도리(桃李)라는 단어도 있다. 복숭아와 오얏, 즉 자두다. 그러나 이는 교육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대개 멀리 내다보면서 생활을 꾸릴 때 십년을 보면 나무를 심고, 백년을 보면 사람을 가르친다고 했다. 그래서 후대를 제대로 가르치자는 교육의 의미는 백년대계(百年大計)로 표현한다. 그 ‘사람 심는 일’의 결과를 복숭아와 자두인 桃李(도리)로 형용했다. 그래서 여기서 桃李(도리)는 그렇게 잘 가르쳐 육성해 낸 ‘제자’의 의미다. 이 桃李(도리)가 등장하는 명구가 있어 여기에 덧붙인다.

“복숭아와 자두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는 그냥 길이 열린다(桃李不言, 下自成蹊).”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馬遷)이 책에서 흉노와 열심히 싸웠음에도 조정이 제대로 기용치 않은 명장 이광(李廣)의 능력과 인품을 예찬하면서 인용한 말이다. 복숭아와 자두의 달콤함은 사람들이 다 안다. 그런 복숭아(桃)와 자두(李)는 스스로 널리 알리지(言) 않더라도(不) 그 밑에는(下) 자연스레(自) 길(蹊, 좁은 길 혜)이 난다(成)는 엮음이다. 원래 민간에서 전해지는 명언을 사마천이 인용했다.

좋지 않은가. 착실하게 실력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다. 자녀에게 이런 가르침을 전하는 게 좋다. 겉으로 요란하게 부풀린 스펙보다는 착실하게 갖춘 실력과 인성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속을 채우지 못한 이름이 허명(虛名)이다. 그보다는 내실(內實)을 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허명(虛名)을 먼저 날리기 위해 분주한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 겉치레에 열광하는 사회의 분위기도 문제다. 그러나 역시 속을 가득 채운 사람이 진짜 실력자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가 발전한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그 점 한번 진지하게 살필 때다. 복숭아와 자두나무 아래에 자연스레 생긴 길, 그 길이 좋은 길이다. 우리는 그런 길 제대로 만들고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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