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25 15:55
개항 직후의 인천항 모습이다. 일본을 비롯한 서양의 문물이 개화기의 한반도에 오를 때 대개 이곳을 거쳤다.

이곳의 유래는 앞에서 소개한 제물포와 같다. 고구려 때 ‘미추홀’, 백제가 땅을 차지했을 때는 ‘매소홀’이었다는 소개 말이다. 지금은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하늘 문’이다. 인천에 들어선 국제공항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대표적인 공항이었던 김포공항의 자리를 대체한 지 오래다.

원래의 이곳 이름은 인주(仁州)다. 고려 숙종 때 순덕태후 이씨의 고향이라서 경사(慶事)의 원천(源泉)이라는 뜻의 경원군(慶源郡)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인종 때 들어서는 문경태후 이씨의 고향이라서 인주(仁州)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어 공양왕 2년인 1390년 이전의 두 왕비에 이어 인주(仁州) 이씨 가문에서 다섯 왕비가 나와 이곳을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고 해서 경원부(慶源府)로 승격했다. 어향(御鄕)은 보통 왕비의 친정 또는 외가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서면서 다시 인주(仁州)라는 명칭을 찾으면서 격이 낮아졌고, 태종 때에는 전국적으로 지명 중 주(州)를 천(川)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仁(인)은 곧 어짊이다. 어질다는 것은 남에 대한 배려, 남의 경우에 대한 동정과 이해, 남에 대한 사랑과 관심 등의 뜻을 모두 담고 있다. 공자(孔子)는 사람이 지녀야 하는 모든 덕목의 기초를 이 어짊으로 봤다. 특히 위로는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 등을 공경하는 孝(효), 그 밑으로는 형제자매와 친구 등을 아끼고 사랑하는 悌(제)라는 두 핵심 덕목의 기초가 바로 이 仁(인)에 있다고 했다. 따라서 공자(孔子)에게는 제 삶을 버려서라도 이 仁(인)을 이룰 수 있는 자세가 필요했다. 바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이 어짊의 도덕적 함의는 매우 방대하다. 동양 사상의 핵심인 공자(孔子)의 정신세계를 가득 채우는 글자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 방대한 도덕의 정신세계를 모두 풀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仁(인)이라는 글자가 만들어낸 단어의 조합을 따라가면서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겠다.

우리는 보통 이 글자를 ‘어짊’으로 푸는데, 딱 적합하다. 우선 착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선량(善良)한 마음이다. 그래서 남을 해치지 못한다. 그러니 사랑과 동정의 의미도 담았다. 그렇게 베푸는 자신의 재능이 인술(仁術)인데, 지금은 보통 의사(醫師) 등이 베푸는 값진 의술(醫術)을 일컫는다.

인애(仁愛)라는 말도 있다. 어질어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성품이 어질고 따뜻해 남을 자상하게 대해주면 그런 덕목은 인자(仁慈)함이다. 여기서 慈(자)는 자애로움, 석가모니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로 자비(慈悲)라는 점을 떠올리면 좋다. 어질어서 남을 후하게 대접하는 성격이 인후(仁厚)다. 그렇게 어질면서 불의(不義)를 멀리하는 성격이 인의(仁義)다.

포악한 정치를 행하지 않고, 어질고 관대한 정치를 선보이면 우리는 그를 인정(仁政)이라고 부른다. 동인(同仁)이라는 단어도 있다. 우리 쓰임새는 많지 않지만, 원래 함께(同) 인덕(仁德)을 행(行)한다는 뜻의 ‘同行仁德(동행인덕)’의 준말로서, 직장 동료 또는 함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게 부르는 말이다. 일시동인(一視同仁)에서 나오는 ‘同仁(동인)’과는 다르다.

一視同仁(일시동인)은 옛 성인들이 백성을 모두 동등하게 보고 그들에게 어짊과 사랑을 베푸는 행동이다. 지금은 차별 없이 남들을 모두 동등하게 대한다는 뜻으로 쓰는 성어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똑똑한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은 예전에 자주 사용했다.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다. 樂이라는 글자가 ‘좋아하다’의 뜻일 때는 발음을 ‘요’로 하는 점 기억해두자.

남을 좋게 부를 때도 이 글자를 쓴다. 상대가 나이가 많은 남성일 경우 그를 인형(仁兄), 나이가 아래일 경우에는 인제(仁弟)라고 적는다. 예전 편지에서 상대를 적을 때 많이 쓰던 단어들이다. 인자(仁者)는 그런 어짊을 행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는 적(敵)이 없다는 말은 성어로 남았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이다.

비꼬는 말에도 등장한다. 부녀지인(婦女之仁)이다. 부녀자처럼 여린 마음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에는 나서지 못하는 여성이나, 남성을 가리킨다. 이는 남녀평등의 요즘 대세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많이 쓴다.

유방(劉邦)과 함께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움츠러들어 결국 다툼에서 패하는 항우(項羽)를 가리킬 때 많이 사용했다. 그런 여린 사람을 ‘여자의 마음’으로 비유했는데, 아무래도 편견이 짙게 배어 있는 단어다. 그런 면모는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의 기질에서 비롯하는 바가 크다고 봐야 한다.

仁川(인천)의 다음 글자 川(천)은 내 또는 개울, 일반적인 하천을 뜻한다. 큰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는 모든 물이 이에 해당한다. 우선 산과 강을 가리키는 산천(山川)이 유명하다. 명산대천(名山大川)이라는 말도 자주 썼다. 아주 뛰어나 유명한 산(名山)과 그렇듯 큰 내(大川)을 일컬었는데, 사실은 그런 곳에서 나라의 평안을 빌기 위해 올리던 제사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좋은 산과 큰 강 등으로 경치가 좋은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명천(名川)이라고 하면 유명한 강이다. 하천(河川)은 강과 시내를 모두 아우르는 단어다. 큰 흐름에서 갈라지는 물 흐름을 우리는 지천(支川)이라고 적는다. 작은 내에서 고기잡이하는 일을 우리는 천렵(川獵)이라고 했는데, 獵(렵)은 ‘사냥하다’, ‘잡아들이다’의 새김이다. 그 하천의 가장자리를 천변(川邊)이라고 한다.

천류불식(川流不息)이라는 성어가 있다. 강이나 내(川)의 흐름(流)이 멈추지(息) 않는다(不)는 말이다. 사람의 왕래, 물자의 교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형용한 성어다. 지금 인천(仁川)이 바로 그렇다. 대한민국 2대 항구로서 일찌감치 개화기의 서구 문물을 끊임없이 한반도에 실어 올렸고, 이제는 세계 교역 10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물자를 쉼 없이 세계 곳곳으로 실어 나른다.

거기에 자랑스러운 인천공항까지 자리를 잡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으로서, 물류(物流)와 사람을 보내고 들이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으니 듬직하기 짝이 없다. 제 자리에서 꿋꿋하면서도 올바르게, 게다가 자랑스럽게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 어짊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 점에서 비록 이름 유래는 그렇지 않더라도, 인천(仁川)은 큰 어짊에 닿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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