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8.25 16:34
[뉴스웍스=한동수기자] 추가경정예산안을 놓고 국회가 시끄럽다. 민생을 앞세운 정부는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여당은 야당에게 추경은 타이밍인데 밍기적 거릴 때가 아니라는 논리로 압박하고 있다. 야당은 여당에게 국책은행들이 막대한 자금을 부실 조선업체에 지원토록한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 대한 청문회 증인 채택을 강요하며 추경 예산안 발의를 지연시키고 있다.
추경의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틈을 노려 정부의 졸속 예산 편성과 추경 취지와 맞지 않는 사업예산도 덤으로 추경예산안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재산인 혈세가 투입되는 추경에 이해할 수 없는 예산이 덤으로 포함됐거나 용처가 불분명한 막연한 예산도 한 두푼이 아니다. 추경 발의 후에도 철저한 감시와 심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5일 서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국회 추경안 심사를 마친 안전행정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산업통상자원위, 보건복지위, 환경노동위의 예비심사보고서와 회의록 분석결과, 포퓰리즘적인 전시성‧일회성 행사를 위한 눈먼 예산이 수두룩했다. 또 추가 예산을 편성해야할만큼 시급하지 않은 용처에 대한 예산안도 국회 예산심의 위원회에 올라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정 없는 해외행사개최 위해 20억원 요청
농림축산식품부의 경우 농‧어‧축산업 등의 수출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113억4200만원의 예산을 신청했다.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한다고 했으나 신청한 예산안의 절반이 넘는 63억4000만원은 홍보‧마케팅 비용으로 명시했다. 홍보와 마케팅은 전문요원이나 외주 사업위주로 진행되는 만큼 일자리 창출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해당 소위의 지적이었다.
농림부는 또 K푸드페어 개최를 위해 20억원을 제출했다. 이 행사는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홍콩, 대만에서 개최한다고 했으나 일정은 제출하지 않았다. 졸속 예산 청구사례다.
또한 국내 업체의 해외 박람회 참가 지원 명목으로 30억원을 신청하기도 했다.
5일 미만의 행사를 위해 5억원이 배정되기도 했다. 이를 심의한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습관적인 예산 편성을 질타했으나 대부분 농림부 안을 반영해줬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국책은행들이 위험에 처하고 민생이 파탄날만큼 급한 추경예산안에 이런 눈먼 돈들도 깨알같이 포함돼 있다. 감시자는 지적만하고 눈감아 줬다. 국민의 혈세만 새나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계 해직자 위한 귀농교육...단 이틀짜리 프로그램에 예산 투입
농림부는 이외에도 ‘귀농·귀촌 활성화 지원 사업’에 대한 예산 7억원을 요구했다.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인 조선·해운업 등에서 해직된 노동자들의 1%정도 700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취지다. 전국 33개 지역 교육기관에서 진행할 예산이라고 소명했으나 제출된 교육기관의 경험은 부족했고 귀농 희망자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다.
예컨대 교육기관의 일정을 보면 조선업에만 종사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귀농교육이 이틀짜리도 있었다. 이틀만에 교육을 받고 귀농과 귀촌을 알선한다는 것이 농림부의 예산배정 취지다. 이를 들은 국회의원들은 아연실색했지만 농림부의 “계획을 잡는데 시간이 부족했다”는 해명에 오히려, 제출예산안에 5억원을 얹어 12억원을 배정해줬다. 여러 지역구에 흩어진 교육기관에 더 많은 예산이 배정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고용부, 인터넷주소 링크만하면 되는데...3억원 요청
고용노동부는 정부가 운영 중인 해외취업정보 사이트인 ‘워크넷’에 ‘해외정보통합망’을 구축하기위해 3억원을 요청했다.
제목만 보면 그럴듯한 취지였으나 알고보니 기존 워크넷에 해외정보망 사이트 주소를 링크만 걸면 되는 일이었다. 굳이 3억원이 필요한 사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관련 익숙한 기술자라면 1시간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에 3억원 예산 배정을 요구한 경우다. 예산이 절반 깎였지만 이를 위해 배정받은 예산은 1억5000만원이다.
고용부는 또 해외 취업 알선을 위해 진행 중인 케이무브 스쿨과 취업성공패키 등 사업을 위해 23억원의 예상 배정을 요청했다, 올해 안에 정원 400명에 대한 취업처 발굴 등 행정절차에 필요한 자금이라고 설명했다. 물리적으로 앞으로 4개월남짓 남은 연말까지 다 소진하기 힘든 예산안이었다. 그래도 고용부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졸속편성의 후유증...지난해 추경 5조4300억원 남아
이렇게 졸속으로 정부의 추경예산안이 편성되고 국회는 시간에 쫓겨 추경 심의를 마치는 것이 관례가 되면서 전년도 예산이 지출되지 않고 다음해로 이월되거나 사장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실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 부처별 추경예산사업 및 기금운용계획변경사업 결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4개 정부 부처가 추경을 요청한 추경예산사업(27조7000억 원)과 기금운용계획 변경사업(31조5000억 원)의 총액(총지출 기준)은 59조2000억 원이다.
지난해 추경편성사업 59조2000억원 가운데 예산을 다 못 쓴 '불용액'은 추경예산사업에서 1조6000억 원, 기금운용계획변경사업에서 1조2000억 원으로 모두 2조8000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지난 2014년 추경예산에서 이월돼 온 금액은 2조6300억원 이었다.
이를 합치면 지난해 추경예산 5조4300억원을 쓰지 못한 것이다.
이는 당장 민생과 산업구조조정 일정에 큰 타격을 입는다는 올해 추경 예산안 약 11조원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렇게 당해연도에 다 쓰지 못한 예산은 이월되지만 사용 항목을 바꿔 집행되는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제대로 집행도 할 수 없는 추경예산안을 일단 ‘확보하고 보자’식으로 타내려는 정부와 이를 감시하는 국회의 흐리멍텅한 눈으로 국민의 혈세를 제대로 보호하는 것은 요원하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여야는 이날도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을 둘러싼 이견으로 마찰을 빚었으나 잠정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이르면 오는 26일 시급한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다는 목적에 정부의 졸속 편성 예산까지 포함된 올해 추경 예산안 국회 통과가 성사될 가능성도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