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30 15:57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 서명의 '강목'은 차례와 순서를 일컫지만, 원래는 줄기와 말단, 나아가 중요함과 가벼움을 가리켰다.

명(明) 나라 때 약학을 연구했던 이시진(李時珍 1518~1593년)이라는 사람이 있다. 1890여 종의 약재(藥材)를 망라해 정리한 책 <본초강목(本草綱目)>으로 유명하다. ‘본초(本草)’는 식물을 약재로 다루는 방법에 관한 총칭이다. 다음 ‘강목(綱目)’이 눈길을 끈다.

사전적인 정의로는 그물과 관련이 있다. 그물의 큰 줄기를 이루는 ‘벼리’를 綱(강), 그 하부를 이루는 그물의 코를 目(목)이라고 적었다. 따라서 사물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과 그 밑을 받치는 것에 대한 차별적인 지칭이다. 풀자면 핵심과 주변이다. 이에 관한 성어가 있다. 강거목장(綱擧目張)이다.

그물의 벼리(綱)를 잡아 올리면(擧) 그물코(目)가 잘 펼쳐진다(張)의 엮음이다. 중심을 잘 잡으면 나머지는 정해진 순서와 틀에 따라 잘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책 이름 <본초강목>도 나왔다. 책의 요체와 그 밑을 이루는 부분, 또는 그런 차례(次例)를 일컫는다.

1418년 음력 8월 11일 경복궁 근정전. 전 날 즉위한 세종이 처음 반포한 교서(敎書)는 이렇게 시작한다. “태조께서 대업을 이루시고 부왕 전하께서 그를 이어 받아…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교서는 그렇게 이어지다 강거목장(綱擧目張)이라는 성어를 사용해 앞으로의 국정 운영 방침을 천명한다. 이어 모반과 대역(大逆), 아비를 죽인 아들 등 극한의 범죄자를 제외한 모두에 대해 사면령을 내리면서 끝을 맺는다.

세종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로 인식한 ‘그물 벼리와 그물코’ 얘기다. 중국 역대 왕조의 통치자, 또는 정치 사상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성어다. 순서대로 일을 하되 큰 것과 작은 것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는 충고를 담고 있다. 정식 기록대로라면 한(漢)대의 역사학자 반고(班固)가 가장 먼저 적은 것으로 나온다. “그물의 벼리를 제대로 늘이면 모든 그물코가 제대로 펼쳐진다(若羅網之有紀綱而萬目張也)”는 내용이다.

앞과 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시급한 것과 하찮은 것을 가리는 일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교의 경전 <대학(大學)>도 이를 여러 차례 강조한다. “사물에는 뿌리와 가지,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그 앞과 뒤를 안다면 도에 가깝다고 하리라(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는 식이다.

이런 방식의 조어(造語)는 한자 세계에 매우 풍부하다. <대학>이 지적한 뿌리와 가지의 본말(本末), 끝과 시작의 종시(終始)가 우선 그렇다. 그늘과 빛을 가리키는 음양(陰陽), 앞과 뒤를 나타내는 선후(先後) 또는 전후(前後), 왼쪽과 오른쪽의 좌우(左右), 가볍고 무거움의 경중(輕重), 서둘러야 할 것의 여부를 적은 완급(緩急), 주인과 손님의 자리 또는 태도를 나눈 주객(主客) 등도 같은 맥락이다.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에 관한 배열(排列), 나아가 중심과 주변을 냉정하게 가르는 전략적 시야가 돋보인다. 따라서 이런 작업은 어쩌면 세상을 이끄는 경세(經世)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다. 세종의 즉위 교서에 ‘그물 벼리와 그물코’의 성어를 언급한 점에 수긍이 간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문제를 두고 벌어진 갈등이 이제는 봉합 국면으로 가고 있다. 제1 야당의 새 대표가 다소 주장했던 '강경 반대'에서 한 발 후퇴하면서 그 조짐이 보인다. 국가 안보는 가장 중요한 정책 결정의 축으로 작용해야 한다. 벼리와 그물코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안보 영역에서 벼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닥친다는 점, 우리가 깊이 유념해야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자 풀이>

綱 (벼리 강): 벼리(그물코를 꿴 굵은 줄ㆍ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사물을 총괄하여 규제 하는 것. 대강(동류의 사물을 구별한 유별). 줄.

目 (눈 목): 눈. 눈빛, 시력. 견해, 안목. 요점. 옹이, 그루터기. 제목, 표제. 목록. 조목, 중요.

擧 (들 거): 들다. 일으키다. 행하다. 낱낱이 들다. 빼어 올리다. 들춰내다. 흥기하다. 선거하다. 추천하다. 제시하다.

張 (베풀 장): 베풀다. 어떤 일을 벌이다. 기세가 오르다. 세게 하다, 성(盛)하게 하다. 넓히다, 크게 하다. 크게 떠벌이다. 내밀다, 드러내다.

 

<중국어&성어>

纲举目张(綱擧目張) gāng jǔ mù zhāng: 본문의 뜻풀이와 같다.

物有本末, 事有终始 wù yǒu běn mò ,shì yǒu zhōng shǐ : 본문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대학>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현대 중국인들의 입말에 자주 오른다. 쓰임새가 많다. 本末终始 běn mò zhōng shǐ로 줄여 말하기도 한다.

舍本求末 shě běn qiú mò: 뿌리(중요함, 핵심 本)을 놔두고(舍) 곁가지(중요하지 않은 것 末)을 추구하다(求)는 엮음.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