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8.31 10:38
1971년 개봉한 영화 <성웅 이순신>의 스틸컷. 조선 최고의 구국 명장인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제작해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국뽕’이란 비속어는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국가를 광적으로 찬양하는 일을 일컫는다. 국가와 민족, 오래전부터 불려온 노래다. 수많은 정치지도자가 이 것으로 자리에 오르고, 수많은 스포츠 스타와 영화가 이로써 흥행 성공을 거뒀다. 여기에는 히틀러가 있었고, 나치를 선전하는 영화 <의지의 승리>도 있었으며, 미군이 인마를 집단으로 살해한 뒤 어린아이나 강아지를 구하는 허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국뽕이 넘쳐난다. 중고등학교 때 단체 관람한 <성웅 이순신>을 비롯해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 국뽕이기에 봐준 심형래 감독의 <D-War>, 뮤지컬 <명성황후>까지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1970~80년대는 국뽕의 시절이었다. 그 때는 ‘돌격’을 외치는 이순신 장군 팔목에 시계가 있어도 꿋꿋이 감동 먹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북선 뒤로 유조선이 보인다면 그냥 극장을 나온다. 애국심이 옅어졌다기보다는 애국심이 합리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국뽕이 나쁜 게 아니다. 잘만 쓰면 국뽕 만큼 재밌는 것도 드물다. 2002년 월드컵 때 국뽕은 정말 짜릿했다. 한일전의 피어오르는 뽕 냄새는 황홀했다. 심지어 허리우드 국뽕은 꼭 미국인이 아니라도 재미있다. 이야기가 치밀하고 풍부하며 역사적 사실에 부합할 뿐 아니라 재미도 있어야 국뽕도 뽕이라는 말이다. 2002월드컵은 우리 팀이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기에 뽕이었다. 정정당당한 국뽕이기에 터키 팀을 응원하는 여유로운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국뽕이 재미없어질 때가 있다. 말도 아닌 황당한 소리를 억지를 쓰거나 적극적으로 역사를 열렬히 왜곡하면서 애국으로 때우려 할 때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욕하면서 자신의 왜곡에는 마냥 열광한다면 재미없다. 미국의 아메리카주의를 매도하면서 국뽕은 당연하다고 여기면 수치스럽다. 재미도 없는 것에 태극기 한 장 달랑 걸어놓고 감동이나 숙연함을 낚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다.

<덕혜옹주>라는 국뽕 영화가 있다. 덕혜옹주는 어릴 적부터 일본에서 공주 대접을 받으며 자라 한국말도 몰랐고, 한국인이라는 의식도 가져보지 않았다. 순종(純宗)의 딸이라는 사실 외에 한국과 연결할 아무런 근거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사람을 독립운동과 연결하려고 억지를 쓴다. 그러다 보니 왕의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 외엔 전부 판타지 국수주의 소설일 수밖에 없다. 뭔가 아니다. 국뽕으로 만들기에 참으로 쪼들리는 주제다. 그래도 실력 있는 감독이 재미있게 연출하여 500만 국뽕을 동원했다.

암담하다. 대명천지에 아직까지 500만씩이나 그런 영화를 본다. 아니다. 달리 말하자. 희망을 보자. 엉터리 국뽕 <D-War>의 800만이 500만으로 줄은 거다. 심지어 스타 니암 닐슨과 이정재가 출현한 허리우드의 웰 메이드 전쟁영화 <인천상륙작전>도 600만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고무적이다. 아무리 국뽕이라도 재미없으면 가슴에 손을 얹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정점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국제시장>이 애국이 아니라 애국이 ‘국제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오락 1위는 정치이고 다음이 스포츠다. 여기에 국가주의를 넣으면 뽕맛이 진국으로 우러난다. 여당은 쌍팔년도 식 ‘종북’ 이슈로 흥행을 노리고 야당은 ‘국민’을 내세워 관객을 동원한다. 스포츠야 당연히 한일전이 뽕맛이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에서 보듯 진부한 국뽕이나 국뽕을 표방한 헛소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스포츠도 무조건 일본을 이기는 게 아니라 정당한 게임이 더 재미있다. 지겨운 것이다. 국뽕도 진화해야 한다. 참신하고 재미있으며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슈를 개발하여 뛰어난 연출력으로 포장할 때다.

더 이상 태극기 한 장만 걸리면 숙연한 모습으로 가슴에 손 올리는 국뽕은 기대하지 마라. 애국도 재미있어야 한다. 강요된 억지 국뽕, <덕혜옹주>같은 헛소리 국뽕은 호환, 마마 같은 불량 동영상일 뿐이다. 불법 다운로드 받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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