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9.01 13:59
[뉴스웍스=김벼리기자] 결국 ‘밑 빠진 독’이 깨졌다. 한진해운 얘기다. 지난 31일 경영난의 늪에 빠져있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앞서 한진해운이 내놓은 자구안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미흡하다고 판단, 추가 지원을 포기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1위, 세계 7위 해운사의 몰락은 관련 업계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것임은 자명하다. 한국선주협회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관련 업계가 입을 경제적 손실을 연간 20조1500억원으로 추정했다. 또한 해운 물동량의 상당 부분을 한진해운에 맡기고 있는 수출업체들의 경우도 운송비가 증가하면 수출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밀리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정부는 선주협회, 항만공사 등과 함께 ‘비상대응반’을 꾸리는 등 관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골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진해운의 ‘침몰’ 이후가 아니라 이전이다. 법정관리에 이르기까지 전개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되돌아보면서 한진해운 사태의 원인을 파악, 이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방안을 강구하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채권단의 고식지계식 대응을 꼽을 수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 그대로 이들은 구조조정 등 문제의 본질에 칼날을 겨누기보다는 그저 끊임없이 돈을 투입하는 식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곧 허공으로 사라질 혈세가 1조원이 넘는다. 

또한 최은영 전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한진해운 수뇌부의 무책임한 ‘배 째라’ 식 대응도 문제였다. 특히 조양호 회장 같은 경우 ‘아쉬운’ 소리만 늘어놓을 뿐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점은 앞서 한진해운과 유사한 절차를 겪었던 현대상선과 비교해보면 두드러진다. 지난 2월 자율협약 시작 이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내려놓는 동시에 300억원 규모의 사재출연을 결정했다. 물론 현대상선의 부채를 고려하면 300억원은 턱없이 부족한 규모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는 그룹 총수로서 책임감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을만하다.

정리하면 이번 한진해운 비극의 원인은 쌍방향적이다. ‘1등’ 기업이 국가 경제를 볼모로 채권단에 자금 지원을 요구하는 무책임한 관행, 여기에 동조하며 국가 경제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태도로 폭탄 돌리듯 혈세를 지원금으로 쏟아부어온 채권단 및 정부의 미온한 대응이 정확하게 맞물린 시스템이 한진해운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시스템을 바로잡지 않는 한 한진해운 사태 같은 ‘밑 빠진 독’의 비극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밑 빠진 독이 깨졌을 때 다른 독을 사오거나, 깨진 파편들을 다시 붙이거나 하는 식의 수습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깨진 독을 자세히 살펴보며 ‘왜 깨졌나’, '앞으로는 어떻게하면 안 깨뜨릴 수 있나'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이에 소홀할 경우 또 다른 밑 빠진 독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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