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05 10:49
G20이 열리고 있는 중국 저장 항저우(杭州)의 유명 호수 시후(西湖)의 풍경이다. 비가 자주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춘추전국 시대 월(越)의 전통과 북방에서 천도한 남송(南宋)의 요소가 결합해 독특한 인문을 자랑한다.

중국의 지명에 杭州(항주)가 있다. 현지 발음은 항저우다. 이 땅이름 첫 글자인 杭(항)이 우리가 많이 쓰는 航(항)이라는 글자의 원래 형태다. 명사의 의미로 사용하면 물을 건너는 배, 동사의 뜻으로는 ‘물길을 건너다’의 의미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도 이곳에 들렀던 모양이다. 그가 이 지역의 커다란 강을 건너려다가 사나운 물길 때문에 주저했단다. 그러다가 지금의 杭州(항주) 인근에서 무사히 강을 건너 ‘물 건넌 땅’이라는 뜻의 현재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동남부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곳인 저장(浙江)성의 도회지다.

이곳 문화는 중국 여느 지역이 대개 다 그렇듯이 나름대로 독특한 인문을 자랑한다. 원래는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 등의 숱한 고사와 성어를 낳았던 월(越)나라가 들어섰던 곳이다. 항저우 인근의 사오싱(紹興)이 구천(句踐), 서시(西施)와 범려(范蠡) 등이 활동했던 그 월나라의 중심지다.

항저우는 그런 월나라의 문화와 전통이 깃든 땅이다. 그러다가 북송(北宋)이 멸망하고 남송(南宋)이 이민족 금(金)나라에 쫓겨 강남으로 내려와 수도로 삼았던 땅이다. 그로부터 항저우는 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에 앞서 만든 대운하(大運河)의 남쪽 시발지로서도 이름을 얻었다.

가장 유명한 명승지는 시후(西湖)다. 중국의 수많은 호박(湖泊) 중에서 인문적인 스토리가 가장 많이 얽혀 있고, 그에 따른 절경(絶境)이 곳곳에 숨어 있어 매우 유명하다. 당나라 천재 시인 백거이(白居易), 북송의 최고 문인 소동파(蘇東坡)가 이 곳의 현지 사또로 부임해 만든 제방이 시후의 명물로 아직 남아 있다.

남송이 이곳에 천도(遷都)한 뒤 항저우는 수많은 북방의 이민 집결지로도 유명했다. 북송 왕조 정권을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한 사람들의 언어는 현지에 살던 원주민들의 언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북방의 왕조 권력 중심에서 사용하던 공식 언어가 이곳에 물밀 듯이 내려와 정착하면서 독특한 언어를 낳았다.

북방의 관화(官話)와 현지 월나라 언어의 화학적 결합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행정의 수도였으니 관화 중심으로 언어가 새로 짜였다. 북방의 공식 왕조 언어와 현지의 알아듣기 어렵던 월나라 언어의 결합으로 항저우 사람들 말은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지금의 항저우 언어는 고립적이다. 주변의 원래 월나라 언어와는 사뭇 다르다. 발음은 물론이고, 단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래서 항저우 언어는 '고립된 섬'으로 여겨진다. 주변의 언어와 매우 다른 독특한 발음과 단어 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저우 사람들의 자존감은 매우 높다. 남송의 수도였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래서 북쪽의 중국 경제 최고 집산지인 상하이(上海)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편이다. 아래쪽 상업 대도시인 닝보(寧波) 사람들도 역시 경시한다. '시골 사람들이 뭘 알겠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항저우에서 G20이 열리고 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그곳에서 미사일 고고도 방어체계(THAAD)를 두고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협상에 나선다. 가뜩이나 자존감이 높고, 그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중국과의 협상이다. 게다가 고립적이며 자존심 또한 하늘을 찌를 듯한 항저우의 인문이 그에 가세했다.

우리로서는 커다란 개방성을 지니면서 그런 중국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중국의 자존감을 함부로 허물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필요 또한 없을 것이다. 중국의 자존심은 인정하면서 지역의 온전한 자유와 평화, 공동의 번영이라는 개방성 속에서 그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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