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9.09 17:03
<사진제공=한진해운>

[뉴스웍스=한동수기자] 한진해운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에 실패하고 법정관리 신청에 다다르자, 후폭풍이 거세다.

한진해운 선박에 대해 세계 곳곳 항구에선 입항거부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입항거부는 한진해운이 밀린 입항비와 유류비를 제때 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또 화물운송을 마친 한진해운 선박들 일부는 용선료 미지급 등의 사유로 세계 각지에서 압류상태다. 화물을 실은 선박은 바다위에 기항 중이고 화물을 하역한 선박은 압류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진해운 선박에 있는 수만 개에 달하는 컨테이너, 그 안에있는 수출 제품들은 수입 업자와 약속한 날짜를 맞추지 못하고 바다 위에 떠 있다. 식품류 등 변질되기 쉬운 물품들은 버려야할 상황이다.

화물을 하역한 후 압류된 선박은 부산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배가 없으니 운송차질은 불가피하다. 뒤늦게 금융당국이 긴급처방을 들고 나왔지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부족이다.

이렇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이후 일주일만에 벌어질 상황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모른척한 것이다.

국책은행을 살리고 썩어가는 좀비기업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국가적 '대(大)명제'를 수행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국책은행들이 앞장 섰었다.

그러나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후유증과 부작용에 대한 아무런 대책은 없었다. 한진해운과 한진그룹이 보여준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역시 기가 찰 정도다.

무책임‧무소신 경영과 무계획적인 감독으로 인한 피해는 한진해운을 이용해 온 중소‧중견 수출기업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피해액과 피해기업 수는 각각 수십조원과 수백개에 달한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는 해운업이 이지경이 된 원인 5가지를 짚어본다.

1. DJ 정권에서 심어진 위기의 씨앗

국제통화기금(IMF)체제였던 1998년부터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기업에 부채비율 200% 유지를 강제했다. 대우그룹이 무너지던 시기였다.

정부가 정한 방침에 맞설 명분이나 배짱있는 기업이 등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운업에는 예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수출주력국가인 우리나라 해운업체의 경우 밀려오는 화물을 자사 보유 선박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쩔수 없이 용선료를 주고 배를 빌려서 영업을 해야하는 것이 대한민국 해운업 구조였다. 용선료는 일정 계약기간을 약속하고 분납형식으로 지급한다. 총 계약기간동안 지불해야할 용선료는 해운업체의 부채로 기록된다.

해운업체의 경우 부채비율 200% 초과 상태라고해서 재무건전성 악화로 판단하면 현실과 다를 수 있다. 용선료 지급분이 늘어난다는 것은 운송물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여지없이 다른기업과 같은 잣대를 해운업계에 들이댔다.

당시 해운업계들은 부채비율을 낮추기위해 용선료 지급분을 미리 회사에 쌓아놓아야 했다. 화물운송을 포기할 수 없다보니 해외 선주사와 용선 계약을 파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선택은 하나. 보유 선박 매각 뿐 이었다. 선박을 매각하면 목돈이 들어오고 그만한 배를 매각대금 일부만 가지고 빌려서 쓸 수 있었다.

자산은 줄었지만 현금은 늘어 부채비율이 감소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국가 기간산업에조차 예외를 두지않은 '밀어붙이기식' 당시 정부의 산업계 구조조정후유증은 불과 8년 후 나타난다. 세계 교역량 증대로 화물운송 물량이 급증했다. 더 많은 배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시기 해운업계들의 보유선박 매각 선택은 2006년부터 어처구니 없이 비싼 용선료 계약을 남발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2. 준비안된 오너일가의 경영승계...‘최은영’회장 취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이 회사 회장으로 재직했다. <사진제공=한진해운>

먼저 한진해운의 탄생을 짚어봐야 한다. 한진해운은 지난 1977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친인 고(故)조중훈 창업주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컨테이너 전용선사를 설립했다.

1986년에는 경영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장남 조양호 회장이 투입돼 경영정상화를 이끌어낸바 있다. 2002년 조 창업주가 사망하자 한진그룹은 4형제간 4개 계열을 쪼개 가졌다. 한진해운은 3남인 고(故)조수호 회장 몫이었다.

2006년 조수호 회장이 사망하자, 해운업계에 아무런 경험이 없던 부인 최은영 회장이 취임한다.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이때부터 높아진다. 최 회장은 용선료를 5배나 높게 지불하기로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선박 확보에 주력했다.

당시 세계 교역량 증가에 따라 선박을 확보하는 것은 필요했지만, 5배나 높게 쳐서 빌려놓아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또 용선 계약은 3년이상으로 하는 경우도 있어 이 기간 중 교역량 감소가 나타나면 뒷감당이 안될 수있기 때문이다. 최은영 회장은 2014년까지 8년간 경영권을 쥐고 있다가 결국 조양호 회장에게 넘긴다. 경영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맡고 있는 동안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155%에서 1445%로 치솟는다. 비싸게 계약한 용선료 때문이다. 한진해운이 위기에 봉착하자 2013년 산업은행에 긴급자금을 요청한다. 2조5000억원을 요청했는데, 산업은행은 2조6000억원을 대출해줬다. 이 돈이면 경영이 정상화된다고 한진해운이 보고서를 제출하고 받아낸 금액이다. 당시 제출한 보고서도 엉터리였다는 것이 속속 들어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국회 청문회에서 새롭게 밝혀질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한진해운이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을 아무도 예측 못했다고 하지만 최 회장은 예측했을 수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003년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최 회장은 책임을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이런 조건을 내건 오너와 이런 조건을 받아 준 산업은행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마땅히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3. 최은영 모럴해저드

최은영 전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과 연관된 부분이다. 회사를 부도직전으로 내몰고 빠져나온 최 회장은 그냥 나오지 않았다. 퇴직금만 53억원을 챙겼다. 8년동안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받은 보수까지 합치면 총 97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지분도 가지고 나왔다. 이 지분을 지난 4월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포기 선언 하루 전날 시장에 내다 판다. 딸들의 지분도 함께 매각한다. 시세 차익은 약 11억원에 달할 것으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 포기 선언을 최 회장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진해운 투자자들은 약 40%의 손실을 입었다. 

뿐만아니다. 최 회장은 회사를 부실기업으로 만들어놓고 한진해운의 알짜 계열사들을 가지고 나와 유수홀딩스를 세우고 외식사업에도 진출했다. 부산에는 국내 최대길이의 보트도 개인소유로 정박시켜 놓고 있다. 보유자산이 10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9일 국회에서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관련 청문회가 열렸고 최 전 회장은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히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사재 출연 요구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4. 한진해운의 ‘배째라식’ 포기선언

지난 2014년 한진해운을 맡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취임 원년 한진해운을 흑자전환시키는데 성공한다. 대한항공 지분 인수금액을 포함해 1조원 정도를 한진해운에 투입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비싼 용선료와 교역량 감소로 인해 결국 채권단에 손을 내밀고 경영권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 후 한진해운보다 규모가 적었던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한진해운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업계에는 지배적이었다.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한진해운의 자구안은 새롭지 않았다. 현대상선이 현정은 전 회장의 지분 소각과 현대증권 매각 등의 그야말로 뼈를 깎는 자구안을 내놓던 시기, 한진해운의 대주주들은 “할만큼 했다”만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했다.

이후 한진해운은 최소 4000억원, 최대 5000억원의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채권단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법정관리 신청에 이르게됐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문제는 이후 벌어진 세계 곳곳 부두의 입항비‧유류비 미지급, 용선료 미지급 등이다. 며칠전까지 한진해운은 비록 채권단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4000억원의 자금을 끌어 올 수 있다고 제안했었다.

그런데 그 시간 화물 운송을 하면서 당장 지불해야할 수십억원에 불과한 입항‧유류비 등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자구안에 있는 금액의 일부라도 변제에 사용했다면 90여척에 달하는 한진해운 선박이 세계 곳곳에서 발이 묶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달 31일에도 부산항을 출항했다.

5. 불꺼진 경제부처 컨트롤타워

유일호(오른쪽)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8~9일열린 조선,해운업관련 구조조정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답변하고 있다. <사진=YTN영상캡쳐>

경제부처와 금융당국은 그동안 산업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수 차례 회의를 반복해왔다. 조선업과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우선순위도 이 과정에서 정해졌다.

지난해말 대우조선해양에는 4조2000억원이 추가로 지원되기도 했다. 해운업에 대해서는 없었다. 해운업이 조선업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비상시 군수물품 운반용으로 쓰일 수 있는 국가기간산업이자 안보시설이다. 그런데 정부는 쉽게 포기했다.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더라도, 후속대책은 있었어야 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이후 후폭풍에 대한 예측이 있었어야했고 대책도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약 열흘의 기간이 흐르는 동안 정부차원에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지원책 발표가 전부다.

올해 39년째를 맞은 한진해운은 ▲지난 정부부터 이어져온 산업정책 실패 ▲오너가의 무능경영과 모럴해저드 ▲무책임경영 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여기에 현 정권의 무능한 관리가 더해진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하루빨리 원점에서 수습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진해운에는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은 한 기업의 청산 수순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백, 수천의 중소기업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의 신속하고 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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