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9.12 15:12
수집과 탐구는 이른바 '덕후'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과 학습으로서는 새로움을 만들어내기 힘들다. 창의적인 덕후가 필요한 요즘이다.

어릴 적 우표를 모아 보았을 것이다. 우체국은 새로 나온 우표 세트 팔아 코 묻은 돈 많이 우려먹었다. 그러다 우표가 없어지며 우체국 지원이 시원찮으니 수집가도 별 재미없어 포기한 듯하다. 이제는 희귀한 페니 블랙(세계 최초 우표)나 우정국 우표(1884년 발행 우리나라 최초우표)를 제외하고 ‘한국의 나비세트’같은 우표를 모은 앨범은 창고 한곳에 곰팡이와 함께 스러져 가고 있다.

수집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호모 컬렉투스(Homo Collectus)란 국민 대부분이 무언가를 수집하는 영국인을 비꼬는 말이다. 여러 활동적인 취미가 있지만 집에서 하는 대표적인 취미는 수집일 것이다. 일본어 오타쿠(お宅, おたく)란 ‘귀댁’이라는 뜻으로 집안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편집적으로 파고드는 사람을 말한다.

흔히 마니아(mania)와 혼동하는데 마니아란 무언가를 즐기는 사람이다. 오타쿠도 요즘은 수집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확장됐다. 종종 자신을 자랑스럽게 마니아라고 하는데 마니아는 일본식 표현으로 영어에서는 ‘미친 것’을 뜻하는 정신질환이다. 굳이 영어로 말하려면 애호가(lover, enthusiast)가 좋을 듯싶다.

“일덕(일본 덕후)이 양덕(서양 덕후)을 못 이긴다”고 한다. ‘덕후(德厚)’란 오타쿠의 한국식으로 ‘덕후’라 하고, 더 줄여 ‘덕’이라고도 하며 오타쿠 짓을 ‘덕질’, 전문분야 실력을 ‘덕력’이라 한다. 그런데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의미하는 오타쿠가 서양 덕후에게 진다는 건 의아하다. 이 표현이 단순히 일본 비디오 게임 같은 하위문화를 넘어서 수집과 연구를 통한 학문적 재생산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양덕’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3층짜리 집의 벽과 천정을 모두 그리스 로마의 기둥과 장식품으로 채워 박물관으로 만들어 버린 존 섬(Sir John Soane, 1753~1837)이다. 영국 신(新) 고전주의의 건축가로서 그가 설계한 작품인 영국은행이나 서머셋하우스의 그리스나 로마식 기둥이나 장식을 보면 진정한 오타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수집하고 연구하여 영국식 건축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것이다. 그러나 양덕은 비단 존 섬만이 아니다. 오늘도 수없는 양덕들이 자기만의 컬렉션을 모으고 연구하여 창조의 밑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일덕이 양덕을 이기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모방이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동양의 목표는 늘 서양이었다. 대상도 서양이었다. 우리야 쇄국이나 하고 있을 동안 일본은 일사불란하게 서양을 베꼈다. 과학에 철학에 문물수집까지 몽땅 베끼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루어 낸 게 소니와 도요타와 유니클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서양을 목표로 하는 한 본토를 넘어설 수 없다. 복사본이 원본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일본을 통해 들여왔다. ‘서양’조차 일본에서 수입했다. 민족의식에서 항일 독립운동까지 모두 일본식 번역으로 배웠다. 심지어 취미인 커피나 음악 감상까지 일본식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은 우리의 목표이자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한일전 축구에서는 죽어도 일본에게 이기려고 하면서 정작 취미에선 자존심도 없이 일본식 카피다.

양덕과 일덕의 관계처럼 일본이 원본으로 자리하고 있기에 복사본 ‘한덕(한국 덕후)’은 결코 일덕을 넘어설 수 없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래서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의미가 없다. 그렇다. 우리의 살길은 그저 축구에서 이기는 것만이 아니다. 일본과 달라지는 것이다. 달라야 산다.

추석이다. 갈 데도 없고 가봐야 길만 막히고 돈만 든다. 댁에서 덕질하며 덕력을 올릴 절호의 찬스다. 추석은 일본에 없는, 일본과 다른 명절이다. 일본과 달라질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번 추석에는 일본 AV나 망가가 아닌 새로운 영역을 모색하는 것도 좋다. 전이나 붙여먹으며 뒹굴다가 한가하면 ‘댁에서’ 나만의 전문영역을 시작해 보기에 추석은 너무나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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