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9.19 13:53
일제 강점기 때 촬영한 조선 왕조 종묘의 정전 내부 모습이다. 제사와 차례는 국가적으로 중시한 큰 행사였다. 그러나 민간에 이 전통이 자리를 잡은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다.

여자친구에게 추석에 정성들여 차린 차례 상을 자랑스레 찍어 보내니 헤어지자는 문자로 돌아왔다고 한다. 예능 프로나 보며 낄낄거리는 남자, 전 부치고 차례 상 차리는 여자는 추석을 맞은 집의 흔한 그림이다. 전 따위는 시장에서 사오자는 의견을 싹 무시하고 집을 기름 냄새로 채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주장은 마치 조직의 쓴 맛을 보여주려는 조폭 두목의 똥고집 같다. 이런 집안일수록 아들 결혼에 예민하지만 여자친구도 바보가 아니니 눈치가 빤하다. 조직의 시골스러움이 싫은 것이다.

조선시대말까지 인구의 약 80%가 성(姓)이 없었다. 성이 없다는 말은 아비 계열의 조상이 모호하다는 말이다. 성이 없으니 제사를 지낼 위패에 쓸 이름도 없다. 당연히 따로 무덤을 쓸 선산이나 묘비도 없었다. 따라서 차례나 제사를 지내기도 쉽지 않았다. 당시에 제사란 ‘이름’ 있고 ‘성’ 있는 사대부나 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성씨라는 뜻의 ‘백성(百姓)’이란 요즘 말로 ‘시민’이나 ‘민중(民衆)’이 아니라 성을 가진 특수층이었다. 국민이나 시민은 백성이 아니라 ‘민(民)’이라 하였다. 성도 이름도 없던 민이란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었다. 노비나 별 다를 바 없었다. 임금님께서 염려하시던 백성에는 내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인구의 80%이상이 농촌에서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이 시골의 농사꾼이었다. 국민의 90%가 다른 직업을 갖는 현재와 완전히 반대였다. 지금도 같은 성씨를 가진 마을을 볼 수 있듯 마을이란 가족 공동체의 확장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상도 같고 역사도 같다. 아니, 달리 말해 노비였을 때 주인도 같았고 성도 함께 공동구매 했을 것이다.

공동체 추석의 제사와 차례도 그렇다. 같은 주인 아래 성을 공동구매하면서 시작한 일이다. 조선을 지배한 종교였던 유교의 민에 대한 이념적인 지배도 이때 시작한다. 유교가 말하는 충효(忠孝)는 조상 제사의 형식을 지닌다. 주자학(朱子學)에서 ‘가례(家禮)’를 강조하는 이유도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의례에 있다.

추석이나 설에 차례나 제사는 유교적인 것이지 민족 전통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대부에겐 500년 된 수입품이고 민에게는 그저 100여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중국문화다. 유사한 수입품인 기독교의 추수감사절 예배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고구려나 신라에서 거행하던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아닌 바에 수입품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유교의 명절 의례가 주로 농사를 짓는 마을 공동체에서 생긴 정서에 기초한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시골 정서다. 농부 가족, 농촌 마을의 풍경이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우리는 도시에 산다. 달리 표현하면 촌심(村心)에서는 서로 맞절하지만 도심(都心)에서는 악수로 끝낸다. 유교는 농심(農心)을 품지만 우리는 각자 상이한 직업에 입각한 시민의식(市民意識)을 갖는다.

조선은 망했고 농업사회는 끝났기에 유교도 사라졌다. 시절이 변해 사회를 지탱하던 충효(忠孝)도 이제는 개인적인 정서다. 하루에 몇 사람 만나기 힘든 농촌에서의 끈끈한 인간관계와 달리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농촌에서야 다 아버지고 동생이지만 도시에서는 그저 지나치는 사람이다. 시골정서인 충효를 도시에 요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비인간적이라 나무라지만 도시에는 도시적인 인간관계가 있다. 집에서야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지만 사회에서는 시민이다. 시민에게는 충효로 꺼낼 수 없는 시민윤리가 있다는 말이다. 아직도 가끔 정신을 못 차리고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어미 애비도 없는 놈”이라 욕하며 촌티 날리는 노친네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며칠 안 남았다.

이번 추석도 많은 이혼과 이별을 만들 것이다. 유교적 의례는 더 이상 가족의 결속과 사회적 통합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는 도시적 감성인 사랑에 기초한 핵가족을 파괴하는 조직의 패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얼마 안 된 수입풍습이다. 성씨를 갖게 되었다는 허위의식에 기초한 양반흉내였을 뿐이다. 한 때 아름다웠던 풍습일 수는 있지만 이제는 보내야 할 때다. 전보다는 튀김이 맛있는 건 각자의 입맛 때문일 테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