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20 16:11
해바라기는 영어로 sunflower다. 그 이름처럼 여름을 대변하는 꽃이기도 하다. '여름'은 열매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열매를 맺는 계절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이 맺는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않아, 내를 이뤄 바다에 이른다. 웬만한 한국인은 이 글 다 안다. 한글 창제에 이어 만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한 대목이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우리말이다. 원문에서 ‘열매’는 ‘여름’으로 나온다. 이 여름과 우리가 지금 맞고 있는 계절 여름은 상관이 있을까.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원(語源)을 따지는 글은 여름이라는 낱말이 해(日), 나아가 농사를 통해 열매를 가꾸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여름은 일조량(日照量)이 가장 풍부해 농사가 활발해져 열매를 맺는 계절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이 점은 한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름을 가리키는 한자 夏(하)의 초기 형태를 보면 사람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손에는 칼이나 낫으로 보이는 기물(器物)을 들고 있는 꼴이다. 따라서 농사일에 열심인 사람의 모습이라고 푼다.

여름을 일컫는 한자 낱말은 제법 많다. 햇빛이 가장 강렬해 더위를 가리키는 글자가 많이 등장한다. 염천(炎天)은 우리에게 낯익다. 불꽃(炎)과 같은 날씨(天)를 일컫는다. 같은 맥락의 낱말이 炎序(염서), 炎節(염절), 염하(炎夏)다.

햇빛이 충만해 붉은 기운을 많이 지닌다고 해서 朱夏(주하), 朱明(주명), 朱火(주화) 등으로도 불렀다. 長嬴(장영)이라고도 하는데, 자라고(長) 차오른다(嬴=盈)는 뜻이다. 회화나무에 꽃이 핀다고 해서 槐序(괴서)라고도 했다. 운치는 퍽 있으나 용례는 많지 않아 조금은 낯선 낱말이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이야기할라치면 그 이름의 어원에도 담긴 열매의 의미를 놓칠 수 없다. 그런 열매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한자는 果(과)와 實(실)이다. 果(과)라는 글자 자체가 나무(木) 위에 달린 열매를 표현하고 있다. 實(실)은 초기 한자 형태에서 직접적으로 열매를 가리키지 않았다. 집을 지칭하는 宀(면)에 재물을 가리키는 貝(패)와 그를 담는 그릇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

재물이 채워져 있는 상자가 집안에 놓인 꼴이다. 이로써 ‘채우다’ ‘채워지다’의 뜻, 나아가 꽃이 떨어진 뒤 맺어지는 열매의 의미를 얻었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식물이 맺는 열매를 과실(果實)이라는 낱말로 표현한다. 열매를 맺는 일은 결과(結果), 결실(結實)로 적는다.

과실(果實)은 생명이 자라나 단단히 영글면서 생긴다. 단단히 영근 열매를 보면서 만들어내는 말이 과감(果敢), 과단(果斷)이다. 영글지 못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를 표현하는 단어가 부실(不實)이다. 중국인이 많이 쓰는 성어 하나가 있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영 아닌 경우다. 華而不實(화이부실)이다.

이제 2016년 여름도 지나간다. 아직 낮에는 덥지만 매우 무더웠던 올해 여름도 마침내 자리를 비키고 있다. 이 여름에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열매를 잘 맺었을까. 그를 잘 키우기 위한 준비는 마쳤는가. 아무래도 답은 석연치 않을 듯하다. '부실'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요즘 머릿속을 자주 맴돈다.

 

<한자 풀이>

夏 (여름 하, 개오동나무 가): 여름. 중국. 하나라.

序 (차례 서): 차례. 학교, 학당. 담, 담장. 실마리, 단서. 서문, 머리말. 행랑방. 서문을 쓰다. 펴다, 서술하다. (차례로)지나가다.

朱 (붉을 주): 붉다, 붉게 하다. 둔하다, 무디다. 연지, 화장. 붉은빛. 주목. 줄기, 그루터기. 적토(赤土).

果 (실과 과, 열매 과, 강신제 관): 실과, 과실. 열매. 결과. 시녀. 과연, 정말로. 끝내, 마침내. 만약, 가령. 과단성이 있다, 과감하다. 이루다, 실현하다.

實 (열매 실, 이를 지): 열매. 씨, 종자. 공물. 재물, 재화. 내용. 바탕, 본질. 녹봉, 작록. 관작과 봉록. 자취, 행적. 참됨.

 

<중국어&성어>

开(開)花结(結)果 kāi huā jié guǒ: 꽃이 피어 열매를 맺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이 잘 펼쳐지는 경우를 지칭한다. 자주 쓴다.

夏雨雨人 xià yǔ yǔ rén: 여름(夏) 비(雨)가 사람을(人) 적신다(雨)의 엮음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管仲)의 에피소드에서 나온 말이다. 무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고마운 비, 훌륭한 덕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원전에 나오는 春风风(風風)人 chūn fēng fèng rén을 앞에 붙여 함께 쓰기도 한다. 봄바람(春風)이 사람을(人) 시원케 하다(風)의 엮음이다.

冬日夏云(雲) dōng rì xià yún: 겨울의 햇빛, 여름의 구름이라…. 고마운 존재다.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华(華)而不实(實) huá ér bù shí: 꽃은 피었으나 열매는 맺지 못하다.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영 아닌 사람, 상태를 일컫는다. 자주 쓰는 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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