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21 13:36
가을의 대표적인 꽃 국화. 추위에도 잘 견뎌 사람의 기개와 절조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즐겨 암송했던 시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머릿속으로 한 번씩은 떠올려보는 글이다. 말이 아름답고 의미 또한 깊으며 그윽하다. 국화(菊花)라는 가을꽃에 드리우는 사람들의 뜻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를 보는 동양의 시선은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별칭 또한 매우 많은 꽃이기도 하다. 서리가 앉아도 자태를 허물지 않는 꿋꿋한 모습에 오상(傲霜), 청한오상(淸寒傲霜), 오상고절(傲霜孤節), 상하걸(霜下杰) 등의 수식도 얻었다.

중국에서는 국화의 꽃잎이 장수(長壽)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수객(壽客), 연령객(延齡客), 만절향(晩節香)으로도 부른다. 해의 정기가 모아져 역시 건강 유지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일정(日精)으로도 적었다. 음력 9월에 피는 꽃이라 해서 구화(九花)로도 부른다.

황화(黃花)는 국화의 대표적인 색깔인 노랑에 빗대 부르는 이름이다. 매우 잘 알려진 명칭이다. 노란 국화를 형용한 또 다른 이름 하나는 금영(金英)이다. ‘황금처럼 노란 꽃’이라는 새김이다. 꽃을 마주하면 사람의 마음이 기뻐져 그 얼굴이 절로 열린다는 점을 두고 취한 이름은 희용(喜容)이다.

사람들이 가장 애송하는 한시(漢詩)는 도연명(陶淵明)의 작품이다. “동녘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캐다가, 말없이 저 먼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다. 국화와 먼 남산의 서경(敍景) 속에서 세상과 나, 객체와 주체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물아양망(物我兩忘)의 마음 경계를 적었다고 사람들은 풀이한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시도 유명하다. 어느 촌락에 들어앉아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농원(農園)에 들렸던 시인이 “중양절 기다렸다가, 다시 국화 앞에 서리라(待到重陽日, 還來就菊花)”고 했다.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 사람들은 늘 국화를 찾았다고 한다.

같은 당나라 시인 원진(元稹)은 국화를 이렇게 적었다. “내가 비록 국화만을 좋아하지 않으나, 이 꽃 지면 이제 다른 꽃은 없다(不是花中偏愛菊, 此花開盡更無花)”. 이른 봄부터 피었던 꽃이 국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피어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꽃이 국화라고 봤던 것이다.

매화(梅花), 란(蘭), 대나무(竹)와 함께 국화는 동양 문인의 사랑을 받았던 ‘사군자(四君子)’다. 추위를 상징하는 서리에도 굽히지 않는 국화는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꽃이라는 점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기개와 절조, 그를 가능케 하는 원숙(圓熟)함이 국화가 주는 큰 이미지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라고 국화를 노래했던 이유겠다.

더위 비켜 이제 곧 추위가 닥친다. 시후(時候)의 갈마듦, 세월의 흐름은 이 무렵에 더욱 깊게 느껴진다. 그렇듯 흘러가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일말의 원숙함이라도 건져야 좋다. 마구 넘치고 번지는 분위기를 조용히 수렴하면서 내 안으로 향하는 시선을 더욱 깊게 들여야 하는 때가 국화의 계절인 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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