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26 10:56
중국 북방의 전통 주택 사합원의 모형이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고, 모든 건물의 구조는 내부지향적이다. 남북의 축선을 활용해 가족 구성원의 위계에 따라 처소의 위치를 배열한다.

베이징의 대표적 전통 주택은 사합원(四合院)이다. 동서남북의 네 벽(四) 또는 건축물들이 주택 가운데의 뜰(院)을 향해 모여 있는(合) 꼴이라는 뜻이다. 어렵게 이해할 필요 없이, 이는 우리 한옥의 ‘ㅁ’꼴 형태의 주택을 떠올리면 좋다. 가운데 만들어진 뜰을 향해 사방의 벽면이 모여 있는 ‘ㅁ’꼴이어서 이 집은 안에 들어서면 우선 조용하고 은밀하다는 느낌에 빠져든다.

벽 외면에는 원래 창 하나도 내지 않았던 주택이다. 따라서 사방의 벽은 마치 성채의 성벽과 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벽과 건물 구조가 가운데에 있는 뜰을 향해 있으니 밖에서는 완연한 폐쇄형 구조다. 내밀하면서 은밀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적합한 건축형태다.

다른 뚜렷한 특징은 남북의 축선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사합원이 많이 생겨나면서 때로는 남북의 축선 구도를 살리지 못한 건축도 등장했지만, 원래의 전통적 사합원은 남북의 축선에 동서의 횡적인 축선이 분명하다. 남북의 축선을 기점으로 가족 구성원의 서열이 분명해진다. 가장 큰 어른이 북쪽의 축선에 거주하고 그를 중심으로 동서 양편으로 나뉘어 짓는 건물에 서열을 맞춰 가족 구성원들이 방을 차지한다.

이 사합원은 베이징의 또 다른 상징이다. 그 사합원 주택 양식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여 년 전의 서한(西漢) 시대 무덤에서 ‘ㅁ’자 형태의 사합원 초기 모형이 출토되고 있으니 그 역사는 매우 장구한 편이다. 중국 북방의 대표적 민가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베이징의 사합원이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남북의 축선이 명료한 이 주택은 ‘질서와 위계(位階)’의 관념을 자랑한다. 번듯한 구획(區劃)의 의미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베이징 사람들의 인문적 의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질서와 위계에 관한 의식이 분명한 만큼 사람들은 정치적 소양이 매우 발달해 있다. 아래 위를 가르는 게 권력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벌이는 이른바 ‘정치적 행위’의 근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적장자(嫡長子) 중심으로 서열과 위계를 매기는 전통적 종법(宗法) 사회의 틀에 딱 들어맞는 구조이기도 하다. 중국 사회가 오랜 농업의 역사를 지녔고, 그런 흐름 속에서 적장자 중심의 종법제도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종법사회 전통에 가장 잘 맞는 주택이 사합원이요, 그 사합원이 대표적인 민가 형태로 자리를 틀었던 곳이 바로 베이징이다.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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