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9.28 10:39

우리에게 정치는 최고 최대 오락이다. 국내 뉴스의 시청률이 높은 이유도 정치가 재미있어서일 것이다. 개그도 시대에 따라 변해 ‘웃으면 복이와요’부터 ‘개그콘서트’로 확대 재생산을 한다. 오락은 개그만이 아니다. 먹방이나 예능까지 다양하다. 뉴스조차 실은 오락이니, 오락끼리 치열하게 경합하는 세상이다.

정치는 팀별 리그를 벌이는데 여당 팀은 북한 전법을 자주 사용한다. 최근 들어 ‘김정은 저격’이라는 새 카드를 도입했다. 종래의 ‘압박’과 ‘붕괴’ 전법과 더불어 양동작전이다. 문제는 이 카드들이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도만 바꿔가며 통일을 예측하는 점쟁이의 점괘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게임이란 상대 팀이 반응해야 하고 그럴 듯해야 재미나 관점이 생기는 법이다. 뭔가 합리적이고 흥미로운 접근이 빠졌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다. 대부분의 공산국가는 종교를 금지한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아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르다. 이는 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적용하여 다른 종교를 금지하거나 부분적으로만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야훼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했듯 공산주의라는 종교도 내 앞에 다른 종교를 두지 말라고 한다. 민주국가에서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은 민주주의란 종교가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도 속내는 종교다. 그것도 무척이나 교활한 종교다. 모든 일의 신을 믿건 돈을 믿건 민주의 원리만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아니라 민주가 상위 종교라는 뜻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법과 세금이 가장 중요한 교리이다. 민주의 교리를 지키는 한 한껏 자유롭다. 즉 민주사회에서 종교인은 민주주의라는 종교와 자기 신앙이라는 두 종교를 믿는 셈이다. 이슬람이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이유도 민주주의를 샤리아 위에 놓기 싫어서다.

어떤 종교든 강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일을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말한다. 모든 일의 원인이 하느님이나 부처님 혹은 알라라는 것이다. 자신은 은총의 결과라고 여긴다. 원인은 신(神)이고 결과는 나와 가족 그리고 주변이다. 신흥종교인 박정희교도 마찬가지다. 불신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이 어이없어 보여도 믿는 자들이 모든 원인을 신의 은총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여기는 한 종교 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

조선왕조는 모든 일의 원인에는 왕과 조상이 있다고 하는 유교를 신봉하던 곳이다. 이 신앙으로 ‘대동단결’했다. 당시 명(明)나라, 청(淸)나라 그리고 일본에서도 조선 붕괴론이 있었다. 조선은 말도 안 되는 개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꿋꿋이 500년을 버텼다. 망한 것도 일제의 점령이지 내부적인 붕괴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종교국도 이와 유사하다. 원인이 신이나 왕에게 있는 한 절대 내부적인 모순으로 붕괴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북한을 민주국가라 오해하면 ‘붕괴론’이나 ‘암살론’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국민투표로 나라의 대표를 뽑는 곳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은총’이나 ‘망극한 성은’이 모든 것의 원인이다. 북한은 인권조차 지도자가 준 것이니 언제든 거두어 가도 할 말이 없다. 먹는 것도 그렇다. 배불리 먹으면 지도자의 은총이고 못 먹으면 충성이 부족해서다. 모든 것의 원인이 백두혈통인 한 저격도 소용없고 내부 붕괴도 있을 수 없다.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이 역모로 세조가 되고 능양군은 반정으로 인조가 되었다. 북한도 다를 바 없다. 암살에 의한 내부 붕괴라는 기대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누가 어떤 종교를 믿던 민주 원칙과 법을 위배하지 않는 한 서로를 존중한다. 그래야 다양한 종교의 공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처럼 법과 종교가 일치하는 신정(神政)국이다. 민주나 이성은 교리가 아니다. 여기에 민주국가에 적용할 원칙을 들고 나오는 건 불교도에게 예수까지 믿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격이나 붕괴는 ‘좌빨교리’나 ‘박정희교’와 마찬가지로 여당교 만을 위한 교리다. 자기만의 교리인지라 이제는 국내 정치 리그에서조차 잘 먹히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나가면 창피만 당한다. 그렇다. 이제는 여당도 허황된 ‘통일’교리 같은 교단용 교리에서 탈피하여 더 정밀한 스토리를 짤 필요가 있다. 여당교를 믿지 않는 신도들에게도 재미를 줄만한 경쟁력 있는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이다. 정치가 뭐라 뭐라 해도 우리에게는 재미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