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28 14:01

단단해지면서 어지간한 약물 등에 항력(抗力)까지 지녀 고칠 수 없는 증세로 자리를 잡은 병이 고질(痼疾)이다. 처음에는 쉽게 보았다가 차츰 깊어지는가 싶더니 사람의 힘으로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까지 확산한 병이다. 우선 떠오르는 성어가 ‘병입고황(病入膏肓)’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 경공(景公)의 이야기다. 그가 어느 날 중병에 들어 용하다는 진(秦) 나라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진맥하기 위해 부리나케 이동하고 있을 무렵 경공은 꿈을 꿨다. 그 꿈에 두 아이가 등장해 나누는 대화내용은 대강 이랬다.

“이 번에 오는 의사가 매우 용하다는데 어떡하지?”. “황(肓)하고 고(膏) 사이에 숨어 있자. 아무리 의사가 용하다고 해도 그 곳에 숨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꿈에서 깨어난 경공은 막 도착한 진나라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병이 이미 고황에 들어 있어 치료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과연 경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경공의 꿈속에 나타난 두 아이는 말하자면 병마(病魔)다. 이 둘이 명의가 곧 들이닥친다는 말에 고황으로 숨어 버린 것을 경공이 현몽(現夢)했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좌전(左傳)>에 나오는 ‘병이 이미 고황에 들다(病入膏肓)’라는 성어의 유래다. 이 성어는 경공의 꿈속에 나타난 두 아이를 가리키는 ‘이수(二竪)’라는 말로도 적는다.

사람의 신체에서 膏(고)는 심장 끄트머리에 달려 있는 작은 지방(脂肪) 부위, 肓(황)은 심장과 횡경막 사이에 있는 공간이다. 침을 사용해 치료하기에는 너무 깊숙하며 위험해 손을 쓰기 힘들고 약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곳이다. 요즘 치료 수준으로는 몰라도, 예전의 의학적 기술로는 전혀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었던가 보다.

이렇듯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병을 일반적으로는 고질(痼疾)로 부른다. 痼(고)는 오래 시간이 지나 자리를 잡은 병을 가리키는 글자다. 숙질(宿疾)이라 적어도 마찬가지 뜻이다. 宿(숙)은 여기서 ‘오래 묵은’의 새김이다. 사람들의 부음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숙환(宿患) 역시 같은 의미다.

인체에 견준 오랜 병증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이지만 그에 국한할 일은 아니다. 어느 사회가 관행적으로 어떤 습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의 구렁으로 깊이 말려드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를 일컫는 단어들도 적지 않다.

우선 누습(陋習)이다. 좋지 않은 습성을 가리키는 단어다. 고벽(痼癖)이라는 말도 그렇다. 아주 오랜 습관이라는 새김인데, 그 습관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좋지 못한 일이 제법 장구한 세월을 거쳐 쌓였을 때 사용하는 단어는 적폐(積弊)다.

침고(沈痼)라는 말은 그런 병증과 나쁜 습성 등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근고(根痼) 또한 같은 맥락의 단어다. 성고(成痼)도 그런 과정의 결과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모두 더 이상 손 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경우다.

청와대와 여야가 요즘 만들어내는 모습이 참 한심하다. 병증이 깊어져 이제는 고질과 고황의 수준에 도달한 듯하다. 조그만 물결이 한 번 일어나면 파랑(波浪)으로 번지고, 일파(一波)는 곧 만파(萬波)로 옮겨져 사회 전체를 요동치게 만든다. 바람 잘 날 없고 물결 잦을 적도 없다.

이 모든 파도를 잠재우는 이 누굴까. 신라 문무왕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마저 떠올리고 싶은 요즘이다. 모든 물결을 누르는 그런 피리 소리 말이다. 그러나 덧없는 기대다. 진나라 경공 꿈속에 나타난 ‘두 아이’는 이미 우리의 고황으로 숨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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