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9.28 16:08

[뉴스웍스=한동수기자] 법원이 한진해운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유력 인수대상으로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가 떠오르고 있다. 머스크는 한진해운만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채권단에 경영권이 넘어가있는 현대상선의 자산까지 인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화물운송량만으로 세계 7위와 13위에 올라있던 국내 1, 2위 해운사가 동시에 해외에 매각될 처지에 몰렸다.

이런 저런 문제를 안고 있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해외에 매각하고 금융권의 손실을 최소화 하면 그동안 골머리를 앓던 해운산업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일까.

해운산업은 다른 산업과는 확연히 다르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해운산업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중요하다.

'국가기간산업' 매각이라니

우리나라는 수출의존도와 자원부족으로인해 수입의존가 높다. 수출입 화물운송에서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99.8%에 달한다. 원유와 철광석, LNG등의 선박운송비율은 100%다.

이제 국적 해운사가 사라지게 되면 우리나라의 수출입화물은 일본과 중국 손에 맡겨질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과 일본에 우리 화물운송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봐야 한다. 화물운송료 인상역시 ‘명약관화’하다. 중소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운송비로인해 약화될 수도 있다.

뿐만아니다. 한반도는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지역이다. 해운산업은 국가 위기시 제4군으로 편제된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의 전시 매뉴얼에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전쟁시 보급선과 병력 수송선 임무를 대체하는 것이 해운산업이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필요한 세계 굴지의 해운업체를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모두다 팔아버리려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해운산업, 국가를 위해 육성해야

해운산업은 국가 위기 상황에 필요한 기간산업이자 국가안보산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해운산업은 ▲고부가가치 창출 ▲외화획득 기여 ▲전후방산업 발전주도가 가능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해운산업은 반도체, 자동차, IT산업에 비해 2배이상 매출액대비 부가가치 비율이 높다”며 “호‧불황에 크게 영향받지 않으면서 무역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하는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운산업은 해상보험, 선박금융 등 금융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철강, 조선, 전자, 기계 항만 등 관련 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해운산업을 지원한다. 다른 산업에 비해 형평성에 어긋날 정도로 티나게 지원한다.

선진국, 해운산업 육성에 파격지원

선진국들은 해운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국선주협회와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이후 전 세계적으로 해운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요 국가별 해운업체 지원 현황을 보면 이렇다.

-미국

해운 안보프로그램(MSP)을 통해 ▲보조금지급 ▲융자보증 ▲세제지원 ▲화물운송지원 등의 다양한 지원책이 존재한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진 MSP에 따라 국가비상시 선사 동원 명목으로 동원선박 60척을 지정, 척당 매년 310만달러(약36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또 해운사가 선박 건조나 수리를 위해 필요한 자금 융자시, 정부가 총 융자액수의 75~87.5%를 보증해주고 있다.

-일본

지난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한 ‘조선-해운 복합 불황시기’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해운사들이 자국내 조선소에서 선복량(선박의 톤(ton)수)확보가 가능하도록 선박투자촉진회사를 설립했다. 선사들에 대한 금융지원은 물론 선박 운영시 에너지절감을 위한 연구개발비의 33.3%를 정부가 지원한다.

-영국

해양산업리더십 위원회(MILC)를 운영 중이다. MILC는 국가차원에서 해운과 항만업계의 육성을 위해 설립됐으며, 선사들과 함께 해운산업 발전은 물론, 성장전략도 매년 제시하고 있다.

-중국

자국에서 건조한 선박으로 자국화물을 수송하게하는 국수국조(國輸國造)정책을 시행하며 조선과 해운 산업을 동시에 육성하고 있다. 선박대출센터를 설립, 선박금융을 지원 중이며, 해운산업 펀드 운영 등 금융지원정책만 10여개에 육박한다.

-유럽(독일·프랑스·덴마크)

해운강국들인 이 국가들은 해운사에 90%까지 선박건조비를 대출해주는 것은 물론, 국부펀드의 전략투자기금을 마련, 해운산업에 지원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억6000만(약5335억원)달러를 (덴마크 정부가) 지원하기도 했다.

책임은 묻되 매각은 신중해야

국내 최대 해운사들이 경영난을 겪은 것은 2008년부터 본격화된 세계교역량감소가 한 몫 했다. 하지만 세계 교역량 감소에도 세계 10위권내 해운사가 모두 한진해운, 현대상선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실경영 책임은 찾아내야 한다.

한진해운의 전 경영진은 국감장에 나와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도 해운산업에 대한 인식변화를 가져야 한다. 그냥 제조업체 한 개 매각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 해운산업이다.

또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국내 해운산업의 붕괴에 대해 해운업체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현 위기의 근본적 원인에는 과거 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 속에 국적선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쌀 때’ 배를 팔고 ‘비쌀 때’ 배를 구입했던 악순환도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해운산업의 영업적자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IMF(국제통화기금)이후 들어선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기업들에게 부채비율 200%를 맞출 것을 요구했다. 해운업체도 마찬가지였다. 배를 빌려서(용선)쓰는 해운업체의 특성 따위는 배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에 부채를 줄이기 위해 국적선사들은 보유선박을 헐값에 해외에 팔았다. 약 110척에 달한다. 해운산업은 2004년이후 호황을 맞이했다. 운영할 배가 부족하자, 선사들은 비싼 가격에 선박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경쟁국에 비해 지원자금도 적은 상태였다.

이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때다. 국적해운사를 쉽게 내줘서는 안된다. 해운산업을 지키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금융 손실만 메우려는 정책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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