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9.29 14:26

[뉴스웍스=한동수기자]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이클무어의 영화가 최근 국내에 소개됐다.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라는 타이틀로 상영 중이다. 미국인이 본 미국은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만 있지 복지‧교육‧세금‧남녀평등 부문에서 유럽 여러나라에 비해 형편 없다는 얘기로 시작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잘하는 나라를 침공해서 배워보자는 이야기다.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판치고 있는 현실을 되새기며 ‘다음침공은 어디?’를 보면 미국을 한국으로 바꿔 대입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영화와 공감대가 금방 형성될 수 있다.

#미국 대선이 한창이다. 최근 도올 김용옥이 쓴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를 펼쳐보면 미국 얘기가 몇 줄 나온다. 여기서 도올은 지난 2000년 미 대선에서 득표율이 높았던 앨 고어가 선거인단 확보에 뒤져 조지 W.부시에게 패배했을 때 미국의 민주주의는 후졌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미국인들 조차 민주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는 대통령 선거 룰을 신줏단지 모시듯 유지하고 있다.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연방국가라는 특성을 앞세운다. 아마도 정치인들의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입증되지 않았다.

이상은 미국이 그렇게 우러러볼 만큼 모든 면에서 훌륭한 국가는 아니라고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본론은 이제 부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윈드햄에서 벌어진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다 실업률 수치 부문에서 잠시 어딘가를 바라보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유튜브>

미국판 '강 대 강'... 오바마에 맞선 의회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이 의회에서 또 거부당했다. 언론에서는 오바마 대통령 7년여 재임기간 중 처음이라고 한다. 레임덕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안이 가결되고, 청와대가 이를 거부하고, 여당대표가 국회의장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국정감사마저 파행으로 진행되고 있는사이 미국 의회와 백악관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미국 상원과 하원은 2001년에 발생한 ‘9‧11테러’, 15년째가 되는 올해 만장일치로 ‘9‧11테러소송법안(테러 행위의 지원국들에 맞서는 정의법안)’을 통과시켰다.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의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자인만큼 사우디 정부의 지원이 있었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안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9‧11테러 피해자 유족과 가족은 사우디 정부에 직접 피해 보상 및 배상 소송에 나설 수 있게된다.

사우디 정부는 이 법안이 의회에 계류 중이던 지난 4월, 미국 정부에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우디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및 달러자산 7500억달러(약 824조원)를 매도할 수 있다고 경고한바 있다.

이 법안을 쥐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3일 외교‧안보상 우려를 제기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의회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 상·하원은 지난 28일 각각 전체회의를 열고 ‘9‧11 테러소송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반대했다. 상원은 찬성 97대 반대 1로, 하원에서는 348대 77로 기각했다.

백악관은 의회를 비난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상원이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한 이래 가장 당혹스러운 일로, 의원들은 오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싸워 '국익'을 얻었다 

이에 대해 몇몇 언론들을 보면 오바마의 레임덕 심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외신에 비슷한 의견도 몇줄 나왔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임기말에 오점을 남겼다” 는 등의 기사들도 여럿 나온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여당인 민주당 원내대표(미국 정당에 당대표는 없음)가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같은 건 없다. 오히려 민주당 역시 대통령의 거부권에 반대했다. 오는 11월에 있을 의회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 의회가 뭉쳤다는 분석도 있긴 하지만 의회는 의회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냈다.  

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미국 국민 대부분은 대통령이 국익을 위한 최선의 결단을 한 것이고 의회는 국민의 안전과 피해 보상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와 의회가 강하게 대립했지만 ‘9‧11테러 소송법’은 얻었다. 

이제 오바마 정부는 사우디에 할 말이 생겼다. “법안 통과를 막기위해 대통령 거부권까지 발동했지만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마이클 무어와 도올이 흉 본 미국이 우리에게 또 외교와 삼권분립간 견제 기능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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