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재필기자
  • 입력 2015.11.10 17:34

자의적·포괄적 법 적용이 문제…정부의 기업 길들이기用으로 전락할 수도

"배임죄는 형법상 '미생'으로 볼 수 있죠."
한 기업 전문 변호사의 말이다. 이 변호사는 "배임죄는 고의성 여부나 법의 적용 잣대가 자의적이라서 명확한 기준의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배임죄가 다시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10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 때문이다. 이 회장은 1657억원의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모호한 기준, 법 적용 자의적 될 수 있어

배임죄에 대해 법원이 '오락가락' 판단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2항에 규정돼 있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가 그것이다. 그런데 얼핏 봐도 기준이 모호하다. 배임죄 처벌이 논란거리가 되고, 법 적용이 자의적·포괄적이 될수 있는 이유다.

배임죄의 핵심은 개인적 이득과 고의성 여부다. 그런데 이 두가지의 기준은 애매하다. 배임죄는 계열사 부당지원 등으로 인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등 경영상의 이유가 대부분인데, 이를 통해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가 김승연 한화 회장의 판례다. 김 회장은 '2005년 사실상의 계열사인 한유통과 웰롭에게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지원 행위를 한 것이 배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한유통과 웰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판매 부진과 원리금 상환 부담에 시달렸다. 결손금만 3000억원대로 자력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화는 고민 끝에 한유통과 웰롭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는 등 긴급 지원에 나섰고, 이들 자회사는구조조정을 거쳐 되살아났다. 당시 '대기업 계열사의 부실은 자율적으로 처리하라'는 정부의 지침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 재판부의 판결문에도 '김 회장이 개인적 이익을 편취한 바 없고, 부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구조조정이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고의성 여부도 애매하다. 경영자를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가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경영자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경영자는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고, 검찰은 어떻게든 고의성을 입증하려 한다. 검찰의 입증 자체가 자의적 해석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준선 교수는 "업무상 배임인지 경영상의 판단인지는 검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며 "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현재의 법제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논리로 악용될 수도

일각에서는 '배임죄'가 정치적 논리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정부나 수사기관 등이 기업 길들이기 차원에서 '배임죄'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기업 총수에게 적용되는 배임죄를 보면 국민 여론이나 사회 분위기 등 감정적 부분에 따라 판결이 갈린다"며 "기업 총수라고 해서 '봐주기' 판결을 해도 문제지만 양형을 더욱 무겁게 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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