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10.05 10:53
[뉴스웍스=김벼리기자] 오는 13일 '21세기 액션 블록버스터 저널리즘'이라는, 다소 아귀가 맞지 않는 장르의 영화가 개봉한다. 그 이름하야 ‘자백’. MBC 해직 PD이자 현 ‘뉴스타파’ PD 최승호 감독의 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지난 2012년 국정원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내몰았다. 소위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 당시 국정원이 내놓은 증거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동생의 ‘자백’이 사실상 전부였다.

그러다 지난 2013년 4월 해당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보도된 이후 최 감독은 한국, 중국, 일본, 태국을 넘나들며 40개월간의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고 그 결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 사진·문서가 모두 거짓임을 밝혀냈다. 결국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유우성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따라서 ‘자백’은 한마디로 최 감독이 이같이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을 취재, 보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국가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햇빛을 두려워하는 범죄자편에 설 것인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햇빛을 기다리는 수호자편에 설 것인가?” 

지난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신문 ‘로로르’ 1면에 실린 선언문 ‘나는 고발한다’의 한 구절이다. 에밀 졸라가 작성한 선언문에는 소위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러난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1894년 대위로 근무하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독일에 기밀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문서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음에도 다만 ‘유대인’이라는 이유가 강력히 작용, 법원은 그에게 ‘종신유형’ 판결을 내린다.

이후 드레퓌스는 무죄이며, 진범은 에스테라지 소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군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나는 고발한다’다. 이 선언문을 계기로 사회여론은 들끓기 시작한다. 프랑스 전역이 ‘정의·진실·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와 반(反)드레퓌스파 또는 반재심파로 나뉘어 격렬한 대립을 시작한다. 이후 지속적인 투쟁 끝에 1906년 드레퓌스파는 마침내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한국과 프랑스, 1898년과 2013년이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드레퓌스 사건은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일 수 있는가.’ ‘저널리즘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100여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에밀 졸라와 최승호 감독은 각각, 그러나 한목소리로 답한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다른 의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 그거 하나밖에 없다. '하나의 영화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꿨다'는 그런 영화로 기억되고 싶다."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신문 ‘로로르’ 1면에 실린 에밀 졸라의 선언문 ‘나는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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