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0.10 10:06

몇 년 전부터 레이스의 인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레이스 치마는 물론이고 레이스 원피스와 레이스 에코백, 레이스 트렌치코트까지 다양한 패션디자인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레이스처럼 불편하면서 쓸데없지만 예쁜 것만으로 충분한 소재가 또 있을까. 레이스는 오래 사용하기가 어렵다. 구멍이 나 있다보니 강도가 약해서 작은 힘에도 해지고 닳아 보풀이 일고 너덜너덜해진다. 또 색이 연한 경우가 많기에 변색이 되어 색감이 바래고 뜨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는 늘 사람을 설레게 한다. 

왜일까? 레이스 커튼과 창문을 그린 개리 번트의 작품에서 그 이유를 찾아본다.

Gary Bunt <Another Year>

레이스 커튼이 화면의 맨 앞에서 등장한다. 그 뒤로 테이블, 그 위의 꽃병, 사진, 조약돌, 배 장식물이 등장하고, 하얀 틀로 짜인 창문이 등장한다. 창문 너머 달빛에 빛나는 바다와 배가 여러 척 보인다. 이것들만으로 이 테이블에서 충분히 이야기는 피어나고 조용한 수다를 피워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전면의 레이스 커튼이 없었다면 좀 다른 분위기였을 것 같다. 아기자기함은 있었겠지만 아름답고 그윽한 분위기는 부족했을 것이다. 

훌쩍 걸쳐진 레이스 커튼의 존재 하나만으로 공간은 달라진다. 아련한 깊이가 등장한다. 이 반투명한 깊이 안에서 자연스레 솔직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상상력이 가미된 일상을 주로 그리는 영국의 화가, 개리 번트 Gary Bunt (1957~)는 화려하지 않은 색채와 투박한 붓질로 정겨움을 드러내는 화가다. 올드한 나무 파레트에 중간 사이즈의 붓으로 쓱쓱 그려내는 유화는 그야말로 편안하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이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 쉬운 듯 쓱쓱 그려낸 레이스의 붓질이 이렇게 정확한 질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레이스는 사치품에 가깝다. 예쁘지만 금방 망가지고 사라진다. 그림에서의 레이스 커튼은 보온도 안 되고, 때도 쉽게 묻을 것이고, 금방 찢어질 것이다. 하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설레게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에는 생존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생존보다 더 큰 것이 필요하다. 현실을 위한 일상의 양식과 일상의 의복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무척 좋은 것을 먹어야 하고 무척 좋은 것을 입어야 한다. 일상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여름 휴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고,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가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작은 사치가 필요하다. 레이스는 그러한 인간다움에 너무나 작은 사치품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꽃, 향초, 커피, 신문, 영화 한 편... 일상에 들여오는 작은 사치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를, 인간이기에 마땅히 누려야 하는 고귀함을 유지하는 데에 약간의 사치는 역시 필수가 아닌가 싶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