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10.10 09:27
유럽의 낭만적인 노천 카페 모습이다. 카페는 책과 대화를 하는 도서관의 기능과 다르다. 최근 카페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요구로 빚어진 시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공부는 집중력이 관건이다. 주변 소음이나 빛의 방해가 적은 곳이 공부하기에 좋다. 도서관이 그런 곳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면 꼭 정숙만이 답은 아니다. 생활 소음이 있는 곳이 더 집중이 잘 돼 공부하기 더 적합할 때도 있다. 선택적인 집중 때문이다. 살아가는 소리나 잡담 같은 기본 소음이 있어야 더 강하게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카페마다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도서관이 주는 무겁고 엄숙함보다는 카페가 지니는 자유스럽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공부하려는 생각이다.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니 카페가 도서관이 돼버리는 느낌이다.

도서관이나 카페나 다 공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용도는 다르다. 카페는 친구를 만나 자유롭게 잡담을 하며 떠들 수 있는 곳이라면 도서관은 조용하고 엄숙하게 책과 대화하는 곳이다. 하나는 사교의 공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학문적 연구의 공간이다. 카페와 도서관이 허용하는 복장조차 다르다.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다. 도서관에서 떠드는 건 도서관의 공익을 침해하는 사적인 행위다. 따라서 도서관의 공익을 생각한다면 정숙해야 한다. 카페란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는 장소다. 떠드는 건 당연하다. 당연히 떠들썩해야 하는 곳에서 정숙을 요구하는 건 개인적인 요구다. 사익을 위해 카페가 지닌 공적 기능을 무시하는 행위다.

최근에 카페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카페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줘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일이다. 공부하던 사람들은 중요한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모임이라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국가고시에 응시한다면 공무원이 되겠다는 사람들이다. 공무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공사를 구분 못하고 사욕을 위해 카페에서 정숙을 요구하는 꼴이다.

더 나쁜 건 양비(兩非)론이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클럽이나 야구장에서도 공부하며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도 해야 할 것이다. 카페에서 정숙 요구는 카페라는 공적 공간이 갖는 기능과 의미를 사적인 욕심으로 독점하려는 짓이기에 양비론이란 결국 교묘하게 사욕에 편승하려는 농간일 뿐이다. 양비론은 공적 공간에 사욕의 여지를 남기려는 짓이다. 카페란 정숙을 요구할 수 없는 시끄러운 곳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공무원 부패가 가장 심한 나라다. 공무원 부패란 바로 사적인 일을 공적인 일로 착각해서 생긴다. 바로 카페에서 공부하며 정숙을 요구하는 만행이 바로 공사를 구분하지 못해 생긴다는 말이다. 자기의 일은 공무이며 중요하다고 여기는 태도나, 공에 사를 끼어 넣는 행위는 바로 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카페는 시끄러운 곳이다. 여기서 공부를 하려면 시끄러움을 감수해야 옳다. 민주주의란 시끄러운 제도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공적인 일을 이루려면 시끄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들처럼 자기의 사욕을 공적인 목적 위에 놓는다면 공과 사 모두를 망칠 수 있다. 이들 공무원 지원생의 태도에서 미래의 부패를 보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