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0.11 10:14

한국인의 냉장고에 가장 먼저 채워지는 식품은 무엇일까? 냉장고에 이 식품을 위한 선반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로 중요한 식품이자 보존도 그리 어렵지 않아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식품이다. 누구라도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렴하면서 영양을 가득 갖춘 달걀이다.

달걀 프라이는 한식 경양식 가릴 것 없이 곁들이기만 하면 주식을 돋보이게 한다. 달걀 프라이 없는 김치볶음밥은 상상할 수도 없고, 달걀 프라이 없는 햄버그스테이크도 상상할 수 없다. 부산의 유명한 중국집에서는 짜장면에도 달걀 프라이를 얹어 준다고 한다. 잘 부쳐진 달걀 프라이를 밥 위에 올리기만 해도 도시락은 화려하게 완성되고, 쌀밥은 더욱더 반지르르 해진다.

하얀 흰자 위에 노란 노른자가 올라간 음식은 순식간에 입맛을 돋운다. 명도가 가장 높은 흰색과 채도가 가장 높은 노랑이 배색되어 환하고 산뜻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고 조리도 간편하고 맛도 질리지 않으니 달걀 프라이야말로 항상 환영받는 음식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Vittorio Gussoni <Still life with eggs and melon>

이탈리아의 화가 비토리오 구쏘니 Vittorio Gussoni(1893-1968)는 유난히 달걀 프라이와 프라이팬을 그린 그림을 많이 남겼다. 주로 생활 주변의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오래 관찰해 그리는 그림이 정물화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비토리오에게 달걀 프라이는 단어 그대로 '일상적인' 음식이었던 것 같다. 또한 그가 일상의 이 음식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렇게 같은 주제의 그림을 여럿 그렸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스마트폰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필터 효과를 주는 데는 단 몇 분이면 되지만,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진득한 관찰과 작업 준비는 물론 오랜 표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시선과 시간은 마음에서 나온다. 일상에 정이 든다는 것은 비토니오의 이런 사례 같은 것이 아닐까?

Vittorio Gussoni <Still life with eggs and onion>

나 역시 달걀 프라이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상을 차리면서 약간의 호사로 달걀을 부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달걀 프라이 하나만 있으면 왠지 든든한 느낌, 노른자를 터트려 흰자를 적시고 밥에 얹어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은 늘 즐겁다. 나 역시 일상의 음식에 정을 주고 있는 것일까? 

가끔씩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에는 특별한 사연이 쌓인다. 그러나 항상 가까이하는 음식에는 스며드는 감정이 쌓인다. 딱히 기억할 순간은 없지만 그저 좋고 고마운 것, 내내 정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정에는 어느새 든든함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비단 달걀 프라이뿐 아니라 질리지 않고 내내 정들어가는 일상들이 여럿 있다. 함께 있어 소중하고 함께 있어 든든한 일상들이 늘어난다. 이렇게 정든 일상을 하나 둘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충만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 정들어가며,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인생은 늘 든든하고 부유하다. 비토리오 구쏘니는 자신의 그림으로 부유한 삶의 즐거움을 기록하고 남겨 준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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