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12 09:43
조그만 우체통이다. 가을에는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저물어가려는 한 해, 시간의 흐름을 뚜렷하게 느끼는 무렵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생활 속에서 차츰 없어져가는 편지(便紙)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주고받는 메일이 편의성에서는 워낙 뛰어나 글을 써서 봉투에 넣은 뒤 우표까지 붙여 보내는 편지가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손수 적은 글을 정성껏 봉투에 담아 보내는 편지의 정서적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왜 便紙(편지)라고 했을까. 구성이 조금은 의아하다. 그저 사람 편(便)에 보내는 글(紙) 정도로 풀 수 있다. 오랜 한자어로는 보이지 않는다. 글자의 조합도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동양에서 편지를 가리키는 단어는 퍽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것은 서신(書信)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새로 생긴 편에 속한다. 보통은 書(서)가 일반적인 편지를 가리켰다. 전란에 쫓겨 고향을 떠났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간절히 가족들 소식을 기다리면서 “집의 편지는 이제 만금이나 나간다(家書抵萬金)”고 했던 대목을 기억하는 사람 많을 것이다.

서신(書信)이라는 단어에 왜 ‘믿음’의 뜻인 信(신)이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급한 일이 생겨 소식을 전할 때 꼭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낸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있다. 제법 그럴 듯한 풀이다. 그러나 서신으로 정착한 무렵은 퍽 뒤라는 얘기가 따른다.

그 전의 편지를 가리키는 글자로는 簡(간)이 있다. 우리가 편지를 다른 단어로 서간(書簡)이라고 적는 이유이기도 하다. 箋(전)도 마찬가지다. 부전(附箋)으로 적으면 ‘쪽지’, 화전(華箋)으로 적으면 남이 보내온 글의 존칭이다. 牘(독)도 그렇다. 원래는 대나무 등에 쓴 글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편지에 해당하는 단어는 척독(尺牘), 서독(書牘)이다.

札(찰)은 공문서 등의 뜻에 편지라는 새김도 있는 글자다. 서찰(書札)은 우리가 제법 많이 쓰는 말이다. 찰한(札翰), 간찰(簡札) 등으로 적으면 곧 편지라는 뜻의 단어다. ‘희다’라는 새김의 素(소)도 편지를 가리켰다. 본래는 흰색의 명주다. 종이가 없었을 때 흰 명주에 글을 적어 보냈던 데서 나왔다. 그래서 척소(尺素)라고 하면 곧 편지다. 서한(書翰)도 자주 쓰는 단어다.

函(함) 역시 편지를 가리키는 글자다. 원래는 글을 담는 봉투의 지칭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단어로는 서함(書函)이 있다. 우리의 다른 용례로는 우편함(郵便函), 사서함(私書函)이 있다. 편지라는 뜻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쓰임새다. 啓(계)는 ‘열다’라는 새김 외에 ‘알리다’의 뜻으로 인해 역시 편지라는 의미를 얻었다.

기러기는 소식을 알리는 전령의 의미를 획득한 동물이다. 가을 하늘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편에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덧대졌다. 우리의 용례는 거의 없으나 중국에서는 잉어도 자주 등장했다. 먼 곳에 있는 가족이 잉어 뱃속에 명주에 적은 소식을 넣어 전해왔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그러나 진짜 잉어는 아니었을 테고, 편지를 담았던 나무 갑이 잉어의 모양이었던 데서 나왔으리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어신(魚信), 어소(魚素), 어서(魚書)라고 적으면 편지의 뜻이다. 잉어 모양의 나무 상자가 두 쪽이어서 쌍리(雙鯉)라고도 적었다. 물고기와 기러기, 어안(魚雁)은 그런 이유로 편지의 총칭이기도 하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는 시가 노래로도 불렸다. 가을의 정조를 잘 드러낸 내용이다. 문득 편지를 쓰고 싶기도 한 계절이다. 나는 지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 싶다. “올 겨울에는 참 춥겠으니 주의하시라”고. 우리가 마주한 여러 상황이 참 어려워 보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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