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12 16:00
잠실 종합운동장과 신천(新川) 일대를 흘러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탄천의 모습이다.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해 물길이 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신천이다.

하천의 중심을 이루면서 물길을 유지하는 좁고 긴 곳을 하도河道라고 적으며, 그곳에서 이뤄지는 물의 흐름을 하류河流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합쳐 부르는 정식 명칭이 바로 하천이다. 하천으로서 큰물의 흐름을 형성하는 게 본류本流, 그곳에 흘러들어 물을 보태는 내를 지류支流로 다시 나눈다.

물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내의 바닥을 하상河床, 그 양쪽이나 한 곳에 넘치는 물을 막기 위해 쌓은 둔덕을 제방堤防으로 적는다. 고수부지高水敷地는 한 때 자주 썼던 말이지만, 일본식 한자 용어라서 잘 쓰지 않는다. 우리 생활과 행정상의 적지 않은 용어들이 일본의 조어造語 영향을 받았는데, 물의 흐름에 의해 생기는 토사土砂의 축적으로 만들어진 내 양쪽의 높은 둔덕이다. 순우리말 ‘둔치’가 그에 비해 훨씬 듣기 좋은 말이다.

산하山河는 울림이 제법 큰 말이다. 산과 강, 즉 나라의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고국산하故國山河라고 하면 어쩐지 나라 잃고 밖으로 유랑하며 조국을 그렸던 우리 조상들의 설움이 생각난다. 산천山川이라는 말도 그에 조응하는 단어다. 고국산천故國山川 역시 같은 맥락의 단어로서 마찬가지의 정서적 울림을 품은 말이다.

대하大河는 말 그대로 큰(大) 강(河)이다. 큰 강은 흐름이 유장悠長해 공간적으로, 또는 시간상으로 적지 않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작고 아기자기한 형식이 아닌, 길고 먼 안목과 포부로 사안을 다루는 예술의 형식을 가리킬 때 등장한다. 특히 소설이 다루는 주제가 광범위하며 퍽 긴 편폭篇幅을 형성할 때 우리는 그를 대하소설大河小說이라고 적는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여서 호흡이 꽤 긴 작품을 대하드라마라고 부른다.

이 강의 흐름을 표현하는 한자 단어 중 하나는 悠悠(유유)다. 느릿느릿하다는 얘기다. 폭이 좁은 골짜기를 맹렬하게 흘러내려가는 계곡의 물, 즉 계수溪水와는 다르다. 그런 강의 흐름을 형용했음인지 ‘川川(천천)’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한漢나라 때 나온 말이니 제법 시간의 때가 쌓인 단어다. 이 단어의 새김은 ‘빠르지 않고 둔하며 무거운 모습’이다. 따라서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가리킨다.

우리가 부사적인 용도로 아주 많이 쓰는 ‘천천히’라는 말이 예서 나오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형용사 ‘천천하다’도 마찬가지다. ‘동작이나 태도가 빠르지 않고 느리다’는 뜻의 형용사다. 물은 꾸준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득 찬 곳에서 텅 빈 곳으로 흐르고 또 흐른다.

그런 물의 흐름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靈感)을 준다. 그로써 남은 말 중에는 천류불식川流不息이라는 말이 있다. 내(川)의 흐름(流)에는 쉼(息)이 없다(不)는 엮음이다. 여기서의 내는 건천乾川은 아닐 듯. 그렇다고 항상恒常의 내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닐 듯하다.

끊임이 없는 물의 흐름 자체를 일컫는 것으로 봐야 옳겠다. <천자문 千字文>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아이들에게 글자의 겉과 속뜻을 함께 깨우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천자문>이니만큼 교훈적인 내용일 게다. 유교儒敎 가르침의 전형적 실천자인 군자君子의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늘 변함없는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행위의 꿋꿋함, 변함이 없이 늘 꾸준한 군자의 행위와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교의 가르침이 다른 어느 곳에 비해 강하게 자리를 잡았던 과거 조선 선비들이 이 말을 두고 벌인 해석은 그런 지향을 보인다. 그러나 유교가 싹을 틔웠던 중국의 요즘 사람들이 보이는 해석은 그와 조금 다르다. 물의 흐름처럼 줄곧 이어진다는 자구字句의 해석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속뜻은 사람 또는 말이나 수레 등 교통의 수단이 끊이지 않고 줄곧 이어지는 모양을 가리킨다. 사업의 번창이요, 사람의 기운이 왕성함을 가리킨다.

그와 가까운 뜻의 성어가 車水馬龍(거수마룡, 또는 차수마룡)이다. 사람 타는 수레(車)가 물(水)처럼, 길을 오가는 말(馬)은 기다란 용(龍)처럼 이어진다는 얘기다. 길에 죽 늘어선 수레와 말 등이 어느 한 사람의 사업 번창 또는 권세 등을 표현해 준다는 말이다. 비슷한 성어로는 絡繹不絶(낙역부절)도 있다. 실이 이어지는 모습이 絡(락), 실을 풀어가는 행위가 繹(역)이다. 그런 상황이 끊이지 않고(不絶)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성어다. 역시 흐름이 끊기지 않고 줄곧 이어지는 왕성한 분위기, 번창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인들의 요즘 해석은 삶속에서 행복을 찾는 현실적인 마음을 담았고, 과거의 틀에 충실한 한국인들의 해석은 좀 더 규범적인 마음을 담았다. 다 나름대로 살아온 환경의 지배를 받은 결과일 것이다. 어느 해석이 더 나을까. 정답은 없다. 그를 단지 우리의 현재 상황에 따라 받아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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