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형님 생각
[이호영의 덕후철학] 형님 생각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6.10.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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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하면 느낌이 온다. 비단 조폭뿐 아니라 우리네가 가지는 ‘형님’은 각별하다. 아우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분이 형님이다.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거기에 형님이 계시다면 형님이 쏜다. 아우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형님”하며 충성하면 끝이다. 끊임없이 아우를 사랑하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 형님이다.

우리네 ‘형님’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의 ‘형님’과 의미가 사뭇 다르다. 형님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국제적으로 서로를 대하는 차이를 만들고 서로에 대한 기대나 실망을 낳기도 한다.

우리는 ‘형님’이라는 말에 ‘부모’의 의미를 슬그머니 끼어 넣는다. 부모가 없을 땐 형이 부모 대신이라는 것이다. 형은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피고 바른 길로 인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이 많은 형에 대해서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 이런 형님에 대한 생각이 개인적인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조직 내 의리(義理)로 넓혀진다. 단순히 유교적인 장유유서(長幼有序)로 해석하기 힘든 부분이다.

중국의 ‘형님’은 우리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르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형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형님이라면 자격을 갖춰야 한다. 나이가 아니라 사회적 직급이나 실력에 따라야 대형(大兄)인 것이다. 아우들을 거느리고 보살필 능력이 있어야 형이다. 달리 말하면, 나이가 어려도 실력이 있으면 형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능력이 없으면 형이 아니고 충성을 하지 않으면 동생이 아니다.

미국에서 일단 ‘형’이란 말이 없다. 모두 브라더(brother)다. 브라더는 평등한 관계다. ‘형 동생’이 아니므로 ‘형제(兄弟)’로 해석할 수 없다. 형은 ‘나이 많은(elder)’을 붙이고 동생은 ‘어린(younger)’을 붙인다. 때문에 형에게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게 형의 의무는 아니다. 브라더는 비교적 동등하다. 우리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아우를 책임져야 할 형은 없다는 말이다.

이 형제에 대한 생각에 우리 역사의 비극이 있다. 애초에 중국 명(明)나라는 형이었다. 그런데 호란(胡亂)때 청(淸)나라가 쳐들어 와 형제의 관계를 요구한다. 자기를 형으로 인정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청나라는 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선은 말갈이나 여진족보다 항렬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형님’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전쟁을 낳았다.

일본이 싫은 이유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동생이다. 그런데 형 노릇 하려고 한다. 동생이 대놓고 형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꼴이다. 배알이 꼴려 볼 수가 없다. 친일파가 싫은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언어, 민족으로 보자면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친일파를 민족의 배신자라 욕하는 것은 동생이 틀림없는 일본을 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이후로 미국은 든든한 형 노릇을 했다. 그래서 형이라고 여기고 섬겼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시장을 개방하고, 자기 물건을 사라고 한다. 동생한테 삥을 뜯고 빵셔틀을 시킨다. 이제 미국은 형이 아니라 고등학교 일진처럼 군다. 형으로 할 수 없는 짓이다. 한국이 미국에게 느끼는 실망감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형도 동생도 없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그저 우호적인 계약을 맺은 친구(friend)다. 어려울 적에 도왔으니 이제는 갚으라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소파(SOFA) 군사조약 같은 불평등한 것들은 애초 도울 때 계약사항이니 자기가 나서서 고칠 이유가 없다. 절대 형제가 아니라 우호적인 입장에서 주고받는 관계다.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 낸 오해의 골이 깊다.

아메리카 인디언에게 포틀래치(Potlatch)라는 풍습이 있다. 이는 족장이나 우두머리가 자기의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베푸는 축제를 이른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그를 “대인(大人)”, 우리말로 “형님!”이라 칭송하며 잘 받아먹으면 된다. 우리네 ‘형님’도 마찬가지다. 존대 말을 쓰며 충성으로 우러러 받들면 형님은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며 어려울 때 도와주고 이끌어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렇듯 포틀래치 식의 인간관계로 세상을 보면 피곤하다.

미국, 중국, 일본은 우리네 형님도, 주군(主君)도 아우도 아니다. 그저 이익을 서로 다투고 손해를 서로 미루려는 관계일 뿐이다. 한국인이 아닌 눈으로, 가족관계를 벗어나 세상을 바라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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