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26 16:56
넓게 트여 멀리까지 뻗는 길의 모습. 최고의 공직에 있는 사람이 염두에 둬야 하는 길의 모습이다. 좁고 어두운 의사결정의 틀은 항상 커다란 문제를 낳는 여지를 품고 있다.

대한민국을 가장 높은 정치와 행정의 토대에서 이끄는 사람의 직함은 대통령, 현재 그 자리에 올라 있는 사람은 박근혜다. 청와대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우리가 다 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는 짐작 수준이기는 하지만 대강은 안다.

이제 청와대에는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해 보는 시점이다. 가장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어느 대통령이든, 어떤 권력자이든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다. 실수가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 신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실수가 빚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늘 돌아보며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은 여러 사람의 중지(衆智)를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 점에서 대통령의 한자 이름을 생각해 본다. 대통령의 이름은 槿(근)과 惠(혜) 두 글자다. 앞의 글자는 우리의 국화(國花)인 무궁화(無窮花)의 다른 한자 지칭이다. 惠(혜)는 유래를 두고 정설이 있지는 않지만, 나중의 많은 용례를 두고 볼 때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어 그들의 마음을 얻는 행위를 가리킨다.

무궁화의 이름은 매우 좋다. 窮(궁)이 없다(無)는 뜻이다. 끝과 막히는 곳 없이 멀리 멀리 퍼지고 번성하라는 뜻이 두 글자에 담겨 있다. 그에 앞서 窮(궁)은 사람의 몸(躬)이 좁고 어두운 구멍(穴)에 갇혀 있는 상태를 말했다. 그로부터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처한 경우, 절박해서 극단의 선택을 해야 하는 지경,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워져서 형편이 말이 아닌 상황 등을 일컬었다.

따라서 사람은 이런 경우를 피해야 옳다. 그에 반대의 뜻을 품은 글자가 達(달)이다. 원래는 큰 길에서 사람이 걸어 다니는 행위, 아니면 사람이 활보할 수 있는 넓고 좋은 길을 가리켰다. 따라서 두 글자는 함께 제법 잘 어울려 궁달(窮達)이라는 단어도 나왔다. 窮(궁)에 이르지 않으려면 達(달)을 생각해야 한다.

무궁화는 그런 함의를 다 지녔다. 넓고 좋은 길, 열려 있는 상황으로 사람이 순조롭게 나아가는 일, 그로써 발전과 번영을 누린다는 뜻이다. 절박하며 좁고 어두운 상황으로 내닫는 일과는 정반대다. 무궁(無窮)에 이르려면 그 방도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를 말해주는 글자가 바로 達(달)이다.

둘 째 이름 글자 惠(혜)는 이미 소개했듯이 내 마음의 자리를 열어 남을 헤아리는 일이다. 그로써 여러 사람의 마음과 의견을 모을 수 있다.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을 앞두고 남의 마음과 의견을 받아들여 내가 지닌 국량(局量)의 편협함을 깰 수 있다.

아울러 남의 마음이 지닌 경계감 등을 풀어줌으로써 그로부터 더 많은 의견과 배려를 받아낼 수 있다. 그런 넓은 마음, 상대를 헤아리는 가슴, 베풂으로써 모두가 잘 어울리도록 하는 배포 등의 뜻을 지닌 글자가 바로 惠(혜)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름은 멋지다. 다 함, 끝, 막다른 곳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무궁화의 함의에다가 남을 헤아려 마음을 얻는 덕의 힘까지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청와대의 경우는 그 반대다. 좁고 음습한 막후, 비서 정치의 협소한 틀로 자꾸 치달아 궁색(窮塞)함으로 내몰리고 말았으니 그렇다.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의미하는 바는 커다란(大) 줄기(統)를 잡아 이끌다(領)는 뜻이다. 이름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살렸다면 ‘대통령 박근혜’는 나무랄 데 없이 잘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 대통령의 직함에 이름의 의미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의 이름에 담긴 뜻을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좁고 어두워 폐쇄적이라고 해도 좋을 의사결정의 틀을 벗고 넓고 크게 사람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너른 지평을 얻으려면 궁지(窮地)에서 벗어나 사람이 활보하는 큰 길로 나서야 한다. 이름에 덧붙여 達(달)이라는 글자가 지닌 함의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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