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27 16:30

요즘 최순실이라는 여인의 행적이 우리사회의 최고 관심거리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세 막후 역할을 했던 종적이 속속 드러나면서 여론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그와 함께 떠오른 말이 ‘팔선녀(八仙女)’다. 재벌가 오너 부인, 권력층의 아내, 고위 공직에 오른 여성 등 8명이 모여 무엇인가를 꾀했다는 혐의와 함께다.

팔선(八仙)이라고 하는 중국음식점에서 자주 회동해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알려졌다. 그 ‘팔선’이라는 말,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다. 여덟 선인(仙人)을 지칭하는 중국 단어다. 이는 중국 민간에서 전해져 온 일종의 신앙에서 번진 말이다.

중국에서 팔선은 따라서 매우 유명하다. 신앙의 한 갈래인 도교(道敎)의 틀에서 자리를 잡았고, 지금도 중국의 민간은 내밀한 믿음의 대상으로 그들 여덟 선인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원래 도교 선인, 또는 신(神)의 지위에 있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으로 특별한 재주를 갈고 닦아 도교의 가장 높은 반열인 선인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 주류를 이룬다.

그 종류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각 시대 별로 민간에서 번지고 전해진 팔선의 인물이 워낙 다양한 까닭이다. 그러나 중국 언어에 이들 팔선은 매우 굵은 행적을 남겼다. “팔선이 바다를 건너는데, 제 각각 신통한 재주를 부렸다(八仙過海, 各顯神通)”이라는 성어 형태로서다.

이들 팔선이 각기 지닌 재주가 중국인에게는 큰 관심거리다. 시대별로 팔선의 판본이 다양해 다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여덟 선인이 각기 지닌 재주, 또는 신통(神通)함이라는 것은 엇비슷하다. 보검(寶劍)과 퉁소, 나귀와 연꽃잎, 큰 바구니 등이 등장한다.

여덟 선인이 제 각각 지닌 이런 소품(小品)은 바다를 건너는 데 반드시 필요한 법술(法術)을 의미한다. 암수로 나뉜 보검이 물을 건너는 데 필요한 보트로 변한다거나, 바구니가 크게 불어나 선박의 용도로 쓰인다든가 하는 식의 설정이다.

중국의 민간이 이들을 즐겨 입에 올리거나, 심지어는 신앙의 대상으로 받드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이들 여덟 선인이 모두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인물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아울러 희한한 재주를 지녀 삶의 거칠고 힘든 세파(世波)를 이겨내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다.

암울한 곳에서 건지는 희망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봉건 왕조 시절의 아주 어둡고 엄혹한 삶의 환경에서 지녀 본 환상의 한 자락이다. 이제 우리도 이런 ‘팔선’의 흐름에 올라탈 듯하다. ‘최순실 게이트’라고 해도 좋을 사건의 흐름에서 느닷없이 이 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덟 여인은 과연 누굴까. 이름은 곧 밝혀질 모양이다. 그들은 뭘 했을까. 뭔가는 분명히 꾸몄을 것이다. 각기 지닌 재주는 무엇일까. 일반인으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특별했을 법하다. 태어난 집안의 부유함, 화려한 이력으로 그들이 권력의 정점을 향해 헤쳐간 자세한 곡절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 또한 아주 대단했을 것이다.

다 궁금해진다. 온갖 기이한 풍경이 등장하는 요지경(瑤池鏡)과 만화경(萬華鏡)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름없을 테다. 그러다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보는 세상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저녁일지 모른다. 권력과 행정의 중심은 이미 비틀거리고, 식을 대로 식어버린 경기(景氣)는 살아날 기미가 전혀 없을 것이다. 정상(正常)은 일찌감치 저 멀리로 사라져, 비정상(非正常)이 겨울의 차가운 바람처럼 거리를 가득 몰려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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