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박정희의 술, 시계 그리고 동상
[이호영의 덕후철학] 박정희의 술, 시계 그리고 동상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6.11.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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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만의 자의식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물건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몸에 지니는 시계, 반지, 넥타이핀이나 혁대 같은 것으로 자의식을 만들어내고 마음의 고향을 그리기도 한다. 그래서 남자의 자의식이 바로 남자의 물건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공인(公人)이 아닌 박정희라는 개인(個人)은 ‘근대화의 주역’이나 ‘독재자’만은 아닌 다른 무엇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하면 먼저 떠오르는 물건이 있다. 값싼 위스키 시바스리갈(Chivas Regal)과 낡은 세이코 시계가 그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장준하는 이 위스키를 두고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종신 독재자가 시바스리갈을 마십니까?”라고 서두를 떼며 “박정희가 암살당할 때 마셨다고 해서 유명해져 엄청나게 좋은 술인 줄 알았는데, 영국에 가 보니 가장 싼 술이더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부터 솔선수범해 가면서 부유층들로 하여금 외제와 사치품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장준하의 정보부족에서 나온 오해다.

당시 궁정동에서 마신 술은 싼 시바스리갈 12년산이 아니라 로얄 살루트(Royal Salute)로 이름을 바꾼 고급술 시바스리갈 21년산이었다. 시바스리갈과 달리 고급스러운 초록색 도자기 병이 특징이다. 즉 로얄 살루트는 장준하가 착각했듯 그리 싼 술은 아니었고, 동시에 그의 취향이 부유층의 사치와도 상관이 없었다는 말이다. 경제적이라기보다는 그만의 입맛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조니 워커(Johnnie Walker)를 놔두고 왜 시바스리갈이었고, 왜 로얄 살루트였던가? 맛과 향이란 보수적인 감각이다. 그리고 맛과 향은 종종 우리를 딴 세상, 처음 그 맛과 향을 느낀 곳으로 데려가곤 한다. 그런 면에서 시바스리갈이 상징하는 곳은 일본군이다. 처음 시바스리갈은 발매 이후 뉴욕에서 크게 인기를 누렸다. 1930년대 미국의 금주법 이후에도 여전히 인기 있었다. 이후 일본에도 수입돼 특유의 알싸한 느낌과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군 장성과 고급장교의 술로 사랑받는다. 시바스리갈은 일본군 장교의 로망이었다.

하급 장교 박정희가 만주에서 마셔보았을 시바스리갈은 고급장교에 대한 동경이고, 급이 다른 로얄살루트는 장성(將星)을 희망하는 장교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박정희의 시바스리갈은 검소함이라기보다는 일본장교로서의 자의식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박정희가 선생님이었을 때 감동했다던 기린맥주에 막걸리 폭탄주가 서민친화의 그림이었다면 시바스리갈은 일본장교의 의미일 것이다. 그 입맛이 종종 그를 추억 속, 마음의 고향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박정희는 즐겨 차던 오래된 세이코 시계에 크게 애착을 가졌었다고 한다. 5.16이전부터 차던 아주 오래된 기계식 시계로서 시계가 고장 났지만 수리하여 다시 사용했을 정도라 한다. 다른 좋은 시계도 많이 찰 수 있는데도 오래된 ‘일제(日製)’ 시계를 고집했다는 건 특별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리라.

세이코는 당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일본을 대표하는 고급 시계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일단 일본과 연관성을 추측해 본다. 독일군이나 영국군, 미군이 장교에게 시계를 지급하였듯 일본군도 장교에게 시계를 제공하였다. 그 시계가 바로 세이코였다. 즉 박정희라는 개인의 자의식을 만드는 소품인 시계 역시 일본 혹은 일본군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그 외에 오래된 허리띠나 금박이 벗겨진 넥타이핀도 그의 소박함을 증명하는 물건이라 보기에 힘들다. 남자들이 흔히 출신 학교나 군대 마크가 새겨진 허리띠나 타이핀을 고집한다. 이 역시 술이나 시계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역사를 지녔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에서는 박정희 동상을 건립하여 광화문광장에 세우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숭배나 우상화라는 반대도 적지 않고 서울시도 반대하여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과 과오를 두고 시비가 만만치 않아서다.

몸에 지니던 물건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검절약 정신만 보는 건 너무나 틀에 박힌 각박한 판단이다. 대신 애용하던 물건을 통해 박정희라는 인간적인 의미, 유년과 청소년 시기의 박정희 사고와 마음을 지배했던 여럿이 더 우리의 관찰 대상일지 모른다.

그에게는 일제의 지배 아래에서 자랐던 사고와 감정이 읽힌다. 그럼에도 그런 역정을 에너지로 삼아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나선 박정희 결기도 읽을 수 있다. 이런 텍스트를 자세히 읽어보자. 차분하게 그를 살핀 뒤에야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를 온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 아직은 광화문에 그의 동상을 세울 시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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