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08 15:29

쥐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우리는 종종 비겁해서 졸렬하기까지 한 사람의 행태를 쥐에 빗댄다. 나라를 상징하는 사직(社稷)의 대들보와 바람벽에 숨어들어가 틈을 벌려 마침내 그를 무너뜨리는 쥐, 곳간의 양식을 훔치는 쥐, 누군가에 들켜 급히 머리 싸매고 구멍으로 내빼는 쥐 등이 그런 경우다.

안목이 형편없어 눈앞의 이익에 함몰하다가 결국 일을 망치는 쥐도 있다. 그런 쥐의 안목과 깜냥을 표현하는 성어는 제법 많다. 우선 쥐의 시야다. 서목촌광(鼠目寸光)은 그런 짧은 쥐의 깜냥을 가리키는 성어다. 눈치만 살피는 쥐의 눈은 서안(鼠眼)이라고도 했다.

이리저리 상황을 저울질하다가 끝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는 쥐의 행태는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고 적었다. 깜냥도 깜냥이지만 배짱과 시야, 뜻과 이상은 전혀 없이 기껏 남의 안색만을 살피다가 일을 그르치는 사람의 모습을 형용했다. 난파선의 쥐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

배가 가라앉기 전 먼저 배를 버리고 떠나는 쥐들 말이다. 전조(前兆)는 기가 막히게 읽는 모양이다. 미리 배가 부서지거나 가라앉을 조짐만 나타나면 먼저 줄을 지어 배를 떠나는 쥐의 능력이자 습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조금의 주저 없이 제 의지했던 곳을 버리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앞의 글에서 樹倒猢猻散(수도호손산)이라는 성어도 소개했다. 猢猻(호손)은 중국 남부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원숭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북부 중국에서는 그를 獼猴(미후)라고 표현한다.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일반적인 원숭이로 꼬리가 짧은 게 특징이다.

그런 원숭이도 제가 의지해 살던 나무 등걸이 쓰러지면 재빨리 자리를 옮긴다. 누군가에 기대 단물을 빨다가 위기가 닥치면 먼저 흩어져 도망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성어다. 담벼락이 넘어질 때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밀쳐 쓰러뜨린다는 말이 있다. 墻倒衆人推(장도중인추)라고 한다. 시세에 편승해 제 갈 길만 가는 경우다.

여러 사람이 배반하면서 가까운 사람마저 곁을 떠나 사라지는 상황도 있다. 衆叛親離(중반친리)다. 넘어진 나무를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원숭이와 다를 게 없는 풍경이다. ‘사람이 떠나면 차도 식는다’는 말도 있다. 人走茶凉(인주차량)이다.

손님으로 남에게 대접을 받을 때 그가 든 찻잔에는 더운 물이 계속 부어진다. 그 차도 따뜻하며, 찻잔 또한 그렇다. 그러나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 그 찻잔과 찻물은 바로 식는다. 더 이상 온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세태의 염량(炎凉)이 쉬이 변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음악이 끝나 사람이 흩어지다’는 말도 있다. 曲終人散(곡종인산)이라는 성어다. 원래는 당나라 시작의 한 구절인 “곡이 끝나자 사람이 보이지 않다(曲終人不見)”에서 나왔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무대와 주변에 남는 공허함을 그린 내용이었으나, 결국 네 글자 성어로 정착하면서 ‘성황 뒤의 허무함’이라는 뜻으로 전해진다.

사람이 출세를 하면 여러 다른 이들이 모여든다. “한 인물이 득세하면 키우던 닭과 개도 하늘에 오르다”는 말이 있다. “一人得道, 鷄犬昇天(일인득도, 계견승천)”이라고 적는다. 권력을 쥐거나 출세한 그 사람 집 앞은 시장과도 같은 소란스러움에 휩싸인다. 문전성시(門前成市)라는 성어의 경우다.

그 반대는 어떨까. 거짓말처럼 어느 한 순간에 사람들의 내왕이 뚝 끊긴다. 염량의 세태가 권력과 금력을 잃은 사람을 찾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사람의 집 문에는 그물을 놓아 참새를 잡을 정도다. 門可羅雀(문가라작)이다. 온탕과 냉탕의 수온을 냉정하게 읽어 그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청와대의 버젓함에 올라타 권세를 누리다가 대통령의 위기에 줄행랑을 치는 얼마 전의 대통령 비서진과 참모진, 일부 각료의 행태가 눈에 띈다. 더 할 것도 없고, 덜 할 것도 없이 쥐를 닮았다. 역시 이 말 알아들으면 진짜 쥐들이 억울하겠지만 말이다.

그 권세에 올라탔던 일부 ‘닭과 강아지’들은 좋은 시절 누리다가 기댔던 나무가 무너지자 재빨리 흩어지는 원숭이처럼 얼른 금을 긋고 대통령 곁을 떠나버린다. 대통령이 마시던 차와 찻잔이 식기 전인데도 열심히 ‘나 몰랑~’으로 나온다. 대통령이 울리던 음악의 악곡이 끝나기도 전인데 곁을 지켰던 이들은 자취를 냉큼 감출 태세다.

대통령의 비선을 이뤘던 이들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그러나 제 잇속 채우려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그들에게 인간적인 도리를 기대할 수는 없을 듯하다. 쥐처럼 내뺄까, 원숭이처럼 도망칠까. 그 정도만 가늠해야 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로 권력의 휘장을 둘렀던 대통령이 우선 문제다. 대통령 측근을 형성했던 관료와 엘리트 등이 지닌 도덕적 소양도 역시 문제다. 그런 권력의 형성에 자질 검증의 칼을 한 번도 들이댄 적이 없던 언론도 문제다. 의심과 우려 없이 뭔가에 갇혀 그런 대통령을 서슴없이 뽑아준 우리 모두도 문제다. 대한민국은 문제투성이의 나라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