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1.09 09:23

주제나 기법이 딱히 강렬하지도 않은데 오래오래 잊히지 않는 그림이 있다. 그에게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그림, 나에게는 의미 없지만 그에게는 의미 있는 그림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그건 경험 때문이리라. 내가 겪었던 경험에 꼭 들어맞는 그림이 있다. 나와 꼭 맞는 감정이 그려진 작품, 내가 이입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간과 장소를 그렸던 그림들이 그렇다.

인간의 생활과 경험을 그린 소박한 그림, 풍속화라고도 할 수 있고 장르화라고도 불리는 그림, 세속적인 일상을 그려냈기에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그림. 그런 사소한 종류의 그림이 ‘멈춤’의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의 거장 중에 카를 슈피츠베크가 있다.

카를 슈피츠베크 Carl Spitzweg(1808~1885)의 그림은 참으로 소박하고 따스하다. 그는 전문 약제사를 본업으로 하여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 화가이며 시인이었다. 나의 가족 중 하나도 약사의 삶을 살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좁은 약국에 갇혀 꼬박 일한다. 전화라도 걸면 1-2분 통화하기도 어려울 만큼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가끔은 성격이 급한 손님, 억지를 부리는 손님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한다. 약사는 장소에 묶인 1인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일과 후의 시간이라고 할 것이 거의 없다.

카를 슈피츠베크 역시 그러한 바쁜 일상을 살았을 것이다. 약에 대한 일반 상식이 적었던 옛날에는 손님들이 얼마나 많이 질문했을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나 많은 감정을 교류했을지.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하나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지. 그는 이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그렇게 그려낸 사람들의 삶은 늘 소박하고 사소해서 더욱 애정이 가득하다.

그의 따뜻한 그림이야말로 장르화 중의 장르화라고나 할까. 그만이 가지고 있는 온기, 그 온기가 머무른 채움의 아름다움이 있다.

Carl Spitzweg,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사순절의 첫날)’, 1860

카를 슈피츠베크가 그린 이 작품의 제목은 ‘재의 수요일’.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인 사순절의 첫째 날을 의미한다. 부활절이 오기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이며, 기독교인들은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삶을 생각하며 근신한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이 그림에서는 종교적인 인물이 아니라 어릿광대가 등장한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뾰족한 원뿔 모자를 쓴 어릿광대는 영락없이 속세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사람들의 쾌락을 돋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바치는 인물이다. 가장 세속적인 인물이 거룩한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릿광대는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빛을 받으며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주저앉은 그는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대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어렵다. 제목을 고려했을 때 그는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버렸던 순간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할 수도 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이 어떠한지 세상의 평가와 자신의 평가를 가누어 보는 시간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잘 살고 싶지만 그리하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생각하는 장소일 수도 있다. 그가 마음을 토해내고 있는 곳은 그의 비밀의 장소다.

몸과 마음이 거꾸로 쏟아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도 모르는 곳을 찾는다. 비밀스러운 장소에 문을 닫아걸고 콕 박혀 있으면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다. 가슴에 가득 찬 슬픔들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나면 거꾸로 쏟아진 몸과 마음을 간신히 주워 담는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면 다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준비가 끝난다.

매일매일, 나의 연약함을 기억한다.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는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렇게 연약함을 쏟아내는 시간과 장소가 다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된다. 그것이 용기가 될 수도 있고, 위로가 될 수도 있고, 기쁨이 될 수도 있고, 이 그림에서처럼 빛이 될 수도 있다. 나를 꾸역꾸역 주워 담는 비밀스러운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가장 연약한 인간이 주저앉은 자리에서 오히려 가장 빛나는 것이 채워진다는 인생의 아이러니, 그것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시간과 장소를 지켜온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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