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09 15:05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위기(危機)다.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한 번 이상은 맞는 상황이다. 어려움이 닥치는 경우다. 그를 이기지 못할 경우 좌절해서 넘어진다. 인생의 길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아서 우리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그런 위기를 잘 살펴야 한다.

한자의 세계에서 그런 위기를 감지하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등장하는 말은 제법 많다. 바람과 비를 일컫는 풍우(風雨)라는 낱말에 깃든 위기의 예감 등은 좋은 사례다. 앞으로 닥칠 불길한 그 무엇을 이 풍우, 풍상(風霜), 풍운(風雲), 풍파(風波), 풍랑(風浪) 등으로 적는 경우다.

편안한 상황에 있을 때도 앞으로 닥칠지 모를 위기를 생각하는 일은 거안사위(居安思危)라는 성어로 적는다. 다음 말은 “생각한다면 갖춤이 있다”다. 한자로는 思則有備(사즉유비)다. 또 이어지는 말이 유명하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이다. 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위기(危機)는 미리 알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앞 글자 危(위)는 사람이 높은 벼랑 같은 곳에 올라 앉아있는 모습을 가리켰다.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다음 글자 機(기)는 화살을 멀리 쏘는 석궁, 즉 예전의 쇠뇌인 弩(노)의 방아쇠 뭉치를 가리킨다.

한 번 쏘면 화살은 멀리 날아가 사라진다. 방아쇠를 가리키는 機(기)는 그렇게 다음 상황으로 번지는 길목, 요소, 계기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위기’는 위험한 상황이 번질 수 있는 때다. 그런 요소가 집중하는 경우를 그래서 우리는 기회(機會)라고 한다.

전란이 빗발치듯 자주 닥쳤고, 재난이 늘 번졌던 옛 중국에서 발전한 한자는 그런 위기의 요소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위기를 그려내는 형용도 퍽 발달한 편이다. 눈썹이 타는 상황을 燃眉(연미)라고 적어 급한 상황이 매우 절박해짐을 뜻한다.

계란이 쌓인 상황을 累卵(누란)이라고 적었다. 한 군데를 건드리면 모든 계란이 무너져 죄다 깨지고 말 경우다. 적군이 성 앞에 도착한 때는 兵臨城下(병림성하)다. 성문을 지키지 못하면 모두 죽을 수 있는 상황처럼 다급한 위기다.

池魚(지어)는 성문 앞 해자(垓字)에 사는 물고기다. 성문에 불이 나면 해자의 물이 바닥난다. 불을 끄기 위해서다. 따라서 언제라도 외부의 요인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釜中之魚(부중지어)는 작은 솥단지 안에 든 물고기다. 곧 죽을 목숨이다. 幕燕(막연)이라는 단어도 있다. 장막 위에 집을 만든 제비다. 흔들려 곧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그 무엇의 표현이다. 둘을 함께 적는 池魚幕燕(지어막연)은 어엿한 성어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비슷한 맥락으로는 深淵薄氷(심연박빙)이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물을 건너야 하는 처지, 살얼음을 밟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경우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이다. 앞 뒤 모두 깊은 계곡이라는 구성이다.

화살이나 총탄이 모두 바닥나고 먹고 살아야 할 양식이 동난 상황은 彈盡糧絶(탄진량절)이다. 건드리면 곧 폭발하는 상황은 일촉즉발(一觸卽發), 가느다란 털에 천근만근의 물건이 달려있는 千鈞一髮(천균일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을 형용한다.

요즘 누군가 일모도원(日暮途遠)을 말했다. 깊어지는 우리의 위기 상황을 표현하면서다. 국내외로 깊은 위기에 직면한 분위기다. 이런 풍랑을 헤쳐 나갈 중지(衆智)와 리더십이 다 필요한데 선뜻 눈에 들지 않는다. 날은(日) 저무는데(暮) 갈 길은(途) 정말이지 꽤나 멀어 보인다(遠).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