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힐러리의 유리천장
[이호영의 덕후철학] 힐러리의 유리천장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6.11.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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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낙선한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가 9일 새벽 (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뉴요커 호텔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패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YTN영상캡쳐>

미국 최초 ‘여자’ 대통령 만들기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여기저기서 유리천장에 막혔다는 곡소리가 들린다. 힐러리가 ‘여자’라서 대통령에 선출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여성’이란 단어가 문제다. 그의 낙선은 남녀차별 또는 유리천장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대통령 후보로 매력이 없었다. 또한 도덕성, 정책, 선거운동 등의 문제도 많았다. 유리천장 주장은 도무지 와 닿지 않는 페미니스트의 엉터리 물 타기다.

힐러리가 누군가?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금발 백인 감리교도다. 인권변호사, 영부인, 민주당 상원 의원, 국무장관을 거쳐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거물 정치인이다. 그가 여자임을 지적하지 않아도 오를 만큼 충분히 올라가 20년 이상 미국 정계를 지배한 인물이었다. 그가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에서 오바마에게 졌을 때도 패인은 ‘유리천장’이 아니었다.

힐러리가 제시한 여성정책은 그가 여자가 아니라도 제시할 수 있는 공약이었다. 그가 여성이라는 점보다는 전력(前歷)이란 측면에서 트럼프보다 훨씬 더 유리했다. 그는 클린턴과 결혼 후 아칸소 주의 어린이 보호 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고 가난한 지역들에 의료 시설을 확충하는 일을 했다. 이 경험으로 그가 클린턴 정부 초창기 의료보험 개혁을 주도하여 상당히 진보적인 인물로 평가 받았다. 즉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아동, 여성, 보건, 인권 관련 전문가라서 그 정책에 밝았다.

한편, 국무장관 시절 그는 공격적이고 호전적이었다. 추진한 외교 정책들의 여파로 킬(kill)러리, 헬(hell)러리라는 별명을 얻는다. 어떤 관리는 “그 사람이 싫어하는 전쟁을 본 적이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게다가 클린턴 재단에서 국무장관 지위를 이용해 청탁을 들어줬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고, 선거자금 관련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특히 공적인 업무에 사적인 e-메일을 사용하고, 이를 은폐하려던 사건이 선거 마지막까지 논란이 되었다. 물론 전형적인 백인이기에 오바마에 비해 흑인이나 히스패닉의 표를 얻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가 비호감인 것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책이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신 성분과 달리 이미지가 너무 귀족적이었다. 전 영부인에게서 ‘흙 수저’의 느낌을 갖기란 쉽지 않다. 부부가 돌아가며 대통령을 한다는 것에도 거부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박근혜를 보자. 그는 유리천장이 미국보다 더 낮고 견고한 한국에서 대통령에 올랐다. 그도 여성이다. 대통령 딸이었기에 그에게만 유리천장이 없었을까? 유리한 면은 있었더라도 애로사항도 많았을 것이다. 국회의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한나라당 당 대표가 되었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노련한 거물 정치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련도 많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후보 경선에서 밀려 재수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난점을 극복하고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끝내는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여러 모로 힐러리와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힐러리의 실패가 유리천장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힐러리와 트럼프의 대결을 악마(evil)와 바보(idiot)의 싸움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별명이 악마이기도 하지만 미국인이 보는 그가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진짜 바보였는지 모르지만 바보 연기를 잘한 건 틀림없다. 트럼프는 협상의 귀재이자 10년간 방송 프로를 이끌어온 노련한 사람이다. 아마 악마보다는 바보가 선거에 더 유리하다고 계산한 뒤 행동했을 것이다.

힐러리의 낙선에는 어디에도 유리천장이 큰 이유라고 우길 근거가 없다. 남자만 트럼프를 찍은 것도 아니다.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인 펜실베이니아나 힐러리의 고향인 시카고에서 졌으니 패인을 유리천장으로만 몰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힐러리의 낙선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물 타기는 재미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 페미니즘의 주장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다가는 식상해져 나중에 어떤 약발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악마는 미국인의 영혼을 사지 못했고 바보는 선택을 받았다. 미국선거에서 미국인의 다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지역적 안배를 적절히 한 바보가 악마보다 더 교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힐러리의 낙선에는 루저의 변명인 유리천장 따위는 결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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