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10 16:20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인구 약 3000만 명이 이동한 중국 역사를 다뤄 큰 인기를 모았던 중국 드라마 '촹관둥(闖關東)의 포스터. 주로 산둥(山東) 사람들이 중국 동북지역으로 터전을 옮긴 큰 사건이다.

우리에게 ‘중국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華僑)다. 대개 ‘중화요리(中華料理)’ 집의 카운터에 커다란 몸집을 하고 앉아서 다소 굼뜨게 행동하며 바람 많고 빗줄기 거셌던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했던 사람들 말이다. 그들의 출신지가 대개는 산둥이다. 99%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의 고향은 대개가 산둥이다.

말수가 많지 않고, 굼뜨게 움직이지만 매우 실속이 있는 행동거지, 거칠어 보이지만 뭔가 의리를 생각하는 듯한 심모원려(深謀遠慮) 식의 말투…. 화교들에 대해 한국인들이 지니는 인상이다. 산둥의 기질은 중국인이 만들어내는 중국의 문화 마당에서도 조금 각별하다. 실리를 지나치게 따지는 다른 지역 중국인들에 비해 산둥 출신들은 의기(義氣)를 많이 앞세운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아울러 몸집이 큰 편이다. 남방의 중국인들보다 평균적으로 키가 크며, 서북의 황하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보다도 굵고 길다는 인상을 준다. 이들에게는 슬픈 역사가 있다.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반에 산둥 지역을 모질게 휘감았던 가뭄과 홍수의 재난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 때문이다.

이들의 당시 이주는 아주 큰 규모였다. 중국에서는 이 산둥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을 ‘闖關東’이라고 적고 ‘촹관둥’이라고 발음한다. 앞의 ‘闖(틈)’이라는 글자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몰려 나가는 행위를 뜻한다. 제법 빠른 속도로 몰려나가는 일이다. 우리도 이 한자를 사용해 ‘틈입(闖入)’이라고 적는데, ‘뭔가 왕창 밀려온다’는 뜻이다.

뒤의 ‘關東(관동)’은 만리장성 동쪽 끝을 가리키는 산해관(山海關)의 너머를 말한다. 그러니까 대규모의 중국인들이 산해관 동쪽으로 이주한 현상을 ‘闖關東’이라고 적는 것이다. 이 현상은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산둥의 많은 사람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의 전란을 피하는 심정으로 모든 가솔을 이끌고 산해관을 넘어 그 동쪽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그 ‘동쪽’이란 지금의 중국 동북3성, 즉 랴오닝(遼寧)과 지린(吉林) 및 헤이룽장(黑龍江)을 가리킨다. 청나라 만주족의 발원지였던 동북 3성은 당시 인구가 적었지만, 청나라가 다른 중국인의 이주를 막는 봉금(封禁) 정책을 실시해 놀고 있던 경작지가 많았으며 자원도 풍부한 곳이었다. 산둥과 함께 인근 허베이(河北)의 많은 인구들도 이곳으로 이동했는데, 그럼에도 다수는 역시 산둥 사람이 차지했다.

그래서 지금 중국 동북3성의 거주민 중 대다수는 산둥이 고향이다. 랴오닝의 대 도시인 다롄(大連)의 경우 도시 거주민의 85%가 산둥을 원적지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동북지역은 산둥 사람이 사실 상 개척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 대목은 우리가 랴오닝(遼寧) 지역을 살필 때 다시 언급할 작정이다. 어쨌든 그 일부가 역시 남부여대의 심정으로 이주한 곳이 한국일 것이다.

한국 화교들이 왜 굼뜬 행동으로 신중함을 보일까, 그리고 두터운 의지력으로 역시 살기가 만만치 않았던 현대 한국의 생활환경에서 어떻게 잘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등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모질고 힘겨운 이주민의 아픈 역사 기억을 문화적 DNA에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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