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11 10:52

이 말이 머릿속으로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법률, 규범 등을 의미하는 法(법)에 도적놈을 가리키는 匪(비)라는 글자의 합성이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옮기자면 ‘법 도적’이라는 의미다. 연원과 용례를 따지면 의미가 조금 더 자세해진다.

물론 중국에서의 쓰임에서 유래했다. 일제(日帝)가 중국을 침략했을 때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일제’라고 하면 잔인하고 무모한 탄압만을 일삼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모습은 달랐다고 한다. 법을 앞세우면서 그에 따라 제 자신의 배를 불리는 행위가 특기였다고 한다.

침략한 현지에서 나름대로 제게 유리한 법률 등을 만들어 놓은 뒤 그에 맞춰 현지인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중국인들은 일본 침략자와 그 부역자들을 ‘법비’라고 불렀다. 몽둥이와 총칼을 들이대면서 협박하는 침략자들보다 그 착취와 탄압의 정도가 더 혹심했다는 후문이다.

물건을 훔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을 해치고 짓누르는 존재가 바로 도적놈이다. 한자로 적으면 ‘적(賊)’이다. 가끔 원수 또는 싸움의 상대를 일컫는 ‘적(敵)’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래 다른 새김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도적의 ‘賊(적)’은 비슷한 새김의 한자가 꽤 많다.

우선 도적질은 물론이고 불법을 일삼는 사람들은 ‘비(匪)’라고 적는다. 이 두 글자를 합성하면 ‘비적(匪賊)’이다. 19세기 말 간도로 이주하는 조선의 사람들에게 행패를 일삼던 사람들이 ‘마적(馬賊)’인데, 원래는 ‘말을 훔치는 도둑’이었다가 나중에 ‘말을 타고 다니는 도적놈’이라는 뜻도 얻었다. 그 활동범위가 행적이 드문 산이라면 그 도적은 산적(山賊), 또는 산비(山匪)라고 적는다.

중국에서는 거주지 인근에서 활동하는 그런 강도와 도적들을 ‘土匪(토비)’로 적는다. 아주 널리 쓰는 단어다. 드넓은 물가, 섬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호수 등에서 노략질을 하면 ‘湖匪(호비)’라고 적는다. 어엿한 군대의 병사였다가 도적질로 직업을 바꾸면 ‘兵匪(병비)’로 적는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인들은 ‘법비’라는 말을 만들어 자신들을 교묘하고 치밀하게 압박하고 착취하는 일본 침략자들을 지칭했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 침략자들 또한 그런 면모를 보였을 법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말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이라는 여인의 비리, 불법, 탈법 행위 혐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 대통령에게 혐의 일부가 직접 모아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하는 추세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보좌했던 참모들의 일부 행태가 주목을 받는다.

청와대 수석 정도면 매우 높은 관직이다. 실제 지니고 구사했던 힘의 크기를 따지면 일반 각료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법이 규정한 직능과 직무의 틀에서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전 청와대 수석의 행보가 단연 화제다.

직능과 직무 규정과 관련해서는 나름대로 빈틈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보의 흐름을 인지했음에도 ‘사정(査正)’의 보이지 않는 책무를 방기함으로써 비선의 발호를 막지 못해 대통령을 위기에 몰아넣은 치명적 오류는 피해갈 수 없다. 그로써 먼저 처벌을 요청하는 청죄(請罪)의 태도를 보여야 했던 사람이다.

곧 다시 검찰에 출석할 이 사람의 태도를 눈여겨보고자 한다. 국민 앞에 겸허하게 서지 않는다면 그는 ‘법비’다. 법의 규정만을 내세우며 그보다 더 높은 도덕과 품성의 범위 안에서 제가 범한 실수와 오류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는 법과 규정을 앞세워 남을 강탈하고 핍박하며 해치는 법 도적과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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