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5.11.13 14:53

중국 최대 인터넷 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광군제’(光棍節)에서 하루에 16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소식은 지난 12일 하루 종일 주요 뉴스 중 하나였다.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롯데백화점이 한해 동안 올린 매출(14조2,000억원)보다 많은 매출을 단 하루만에 올린 셈이다.

이날 오후 나온 또 하나의 뉴스는 국회에서 전통시장 1㎞ 이내에 대형마트의 출점을 금지하는 규제를 통과시켰다는 것이었다.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오는 23일 효력이 만료되는 관련 규정의 존속기간을 오는 2020년까지 5년 연장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中광군제 하루 매출 롯데백화점 연 매출보다 많아

두 뉴스를 접한 국내 유통업계는 낙담에 빠져들고 있다.

아무리 한국과 중국의 인구수가 30배 가까이 차이난다고는 하지만 국내 유통업계 부동의 1위인 롯데가 1년간 판매한 액수가 중국 알리바바의 하루 매출에도 못미친다는 현실은 암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월 2회 의무휴업 규제 이후 계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이어온 대형마트업계는 “상업지역에 쇼핑몰을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소비자 편의와 내수 활성화를 외면한 처사”라는 반응이다. 이마트의 매출(기존점 기준)은 2012년 10조900억원에서 2013년 10조800억원, 2014년 10조800억원으로 정체에 머물러 있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6조4,650억원, 6조4,600억원, 5조9,900억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대형마트 규제 이후 전통시장 매출이 늘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측은 대형마트 규제 이후 전통시장 매출이 12.9% 증가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은 국내 전통시장 매출액이 2009년 22조원, 2012년 20조1000원에 이어 지난해 19조9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고 집계했다.


◆내수 살리기 정책에도 배치

대형마트 규제는 최근 정부가 직접 나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주도하며 소비를 유도하던 내수 살리기 정책과도 배치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효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해 1인당 연평균 소비지출액이 6만8,000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추계가구(1,845만8,000가구)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소비지출액이 1조2,551억원 줄어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바꿔말하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폐지할 경우 그만큼 소비진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대형마트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가나 중소협력업체 등 납품업체 매출도 월평균 1,800억원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이들의 피해도 간과할수 없다. 결국 대형마트를 규제해야 전통시장이 산다는 명제는 구시대적인 낡은 프레임인 셈이다.

◆유통 주도권 온라인·모바일로 넘어가는 중

문제는 이미 소비자들의 쇼핑 행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심지어 모바일로까지 빠르게 옮아가고 있는 마당에 오프라인 매장 출점 규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는 것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 규모는 45조2,440억원으로 전년보다 17.5% 증가했다.

유통업 맹주인 대형마트 거래액(46조8,090억원)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며 올해는 역전이 확실시돼 온라인쇼핑이 최대 유통업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모바일 쇼핑 거래액은 14조8,090억원으로 온라인 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섰으며 성장률은 100% 이상이다.

유통업태의 주도권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미 넘어가고 있는데 정부나 국회가 눈에 잘 보이는 대형마트만 옥죈다는 대형마트들의 볼멘 소리도 무리가 아니다.

◆국내 직구족 美 블프, 알리바바까지 진출...국경없는 쇼핑 전쟁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지고는 있다지만 해외 직구를 즐기는 국내 소비자들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국내 유통업계에는 위협요인이다. 이미 해외 직구족의 쇼핑액수가 연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벌써부터 인터넷상에는 2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열기가 뜨겁다.

중국 알리바바의 약진은 앞으로 거의 재앙 수준이 될 수 있다. 올 광군제에는 전체 거래의 68%가 모바일을 통해 이뤄졌으며 지난해의 46%에서 크게 높아졌다. 다니엘 장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알리바바는 ‘광군제’를 전례 없는 ‘모바일 쇼핑 경험의 날’로 변모시켰다”며 “24시간동안의 쇼핑 마라톤에서 고객들은 우리가 모바일 사용자를 위해 준비한 것들에 매시간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동시에 10억 명 이상이 스마트폰에 접속하는 중국에서 온라인쇼핑은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며 “이번 쇼핑 이벤트는 해외 소비자들까지 끌어오기 위한 알리바바의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해에는 광군제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겠다”며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었다.

국경없는 쇼핑전쟁이 이미 시작됐는데 더 이상 정부가 대기업이라고 규제일변도로 옭아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게 국내 유통업계의 목소리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굳이 법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대형마트가 신규출점시 자율적으로 재래시장이나 소상공인단체와 상생 협의, 출점 이후 영업 방향, 영업방해품목 제외 등을 논의하도록 방향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