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11.14 09:29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여름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며 모래사장에 글을 쓰고 있다. 사진은 칼럼내용과 무관함. <사진출처=박근혜대통령 페이스북>

사람마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 다르다. 같은 뜻이라도 자라난 환경, 앉은 자리, 믿는 종교에 따라 실감하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박근혜대통령에게는 ‘혼’이나 ‘우주’가 그렇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대하는 언론보도나 시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하야’나 ‘사퇴’다. 대다수의 국민이 그토록 외치는 데도 그는 꿈쩍도 안한다. 이런 중성적인 단어가 박근혜에게는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야’나 ‘사퇴’로는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의 상태에 따라 그가 알아들을 적절한 말을 써야 한다.

‘하야(下野)’는 왕정의 단어다. 왕이 물러나는 일이 하야다. ‘사퇴(辭退)’는 공직에서 쓴다. 본인의 결단으로 과오를 책임지고 물러나는 일이다. 반대로 모든 권력은 국민에 있으므로 고용자인 국민은 피고용인인 대통령을 ‘해고(解雇)’할 수 있다. 사퇴는 고용인을 인정하고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므로 고용인이 싫다고 버틸 수 있지만 해고는 그냥 짐 싸서 나가라는 명령이다. 때문에 국민의 입장에서 사퇴하라고 부탁하는 것 보다는 ‘해고’를 통보하는 게 더 명확한 의시표시다.

혹자는 현재의 사태를 ‘왕정(王政)과 민주(民主)’의 대결이라 한다. 짧은 견해다. ‘하야’나 ‘사퇴’를 주장하는 시민 입장에서는 수긍할 대목이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아니다. 그는 시민이 아니다. 민주나 왕정이 아니라 신정(神政)을 꿈꾸는 종교인이다. 그토록 '무당'이니, '굿'이니, '민비'니 '요승 라스푸틴'을 빗대어 비난하고서는 결론으로 ‘왕정 대(對) 민주’의 프레임을 내놓으면 힘 빠지는 노릇이다. 자기 프레임에 갇히는 꼴이다. 현실을 보자. 박근혜가 바란 것은 왕이 아니라 ‘혼’과 ‘우주’다.

박근혜는 취업경력이나 생업걱정을 한 적이 없다. 때문에 그의 사전에 ‘사퇴’나 ‘해고’는 없다. 어쩌면 국민이 “빵이 없다”하면 케이크를 권할 사람이다. 그러니 머릿속 사전에도 없는 단어 ‘사퇴’나 ‘퇴진’을 백날 외쳐봐야 그의 폐부를 찌르지 못한다. 그는 왕이 아니라 왕의 자리에 앉은 공주다. 공주는 마치 재벌 2세나 다를 바 없다.

정유라 말대로 돈도 능력이니 부모 돈 쓰며 즐기면 그만이다. 모든 것을 책임지던 부왕(父王)과는 다르다. ‘하야’는 왕에게나 소용될 말이다. 타고난 지위인 공주에게는 하야할 방법도 없다. ‘하야’ 역시 그의 사전에 없는 공염불이라는 말이다. 그에 이르면 우리에겐 절절한 현실이 이렇게 제 색깔을 잃는다.

최태민과 최순실이 부린 농간에 놀아난 정황이나 그의 수필과 연설로 보건대 박근혜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성향이 강한 종교인이다. 세속(世俗)적인 정치보다는 성(聖)의 세계를 살아가는 듯하다. 그가 사과문을 발표한 다음날 종교계 인사를 불러들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세속적인 정치에서 일어난 문제를 종교로 해결해 보려고 한다. 불통의 이미지 역시 이런 종교적인 태도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그의 마음은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의 사전 역시 종교 용어로 가득할 것이다. 심지어 국민의 요구인 ‘하야’나 ‘사퇴’조차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돌아온 탕자(蕩子)가 신에게 죄를 회개함으로써 용서를 받듯 국민에게 사과해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하지만 청와대는 신의 권능조차 금지된 세속 권력의 영역이다.

박근혜는 ‘퇴진’이나 ‘사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한다. 말해도 모른다. 모든 것이 신에게서 비롯한다고 여기는 종교인에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을 백날 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다. 그렇더라도 알려야 한다. 시민의 요구를 그의 폐부에 와 닿는 언어로 바꿈으로써 말이다. 그런 '번역'이 필요한 때다. 방법은 지금까지의 세속적인 언어가 아닌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야’나 ‘사퇴’보다는 ‘사탄’, ‘악마’. ‘지옥 불’, ‘파계’, ‘파문(破門)’, ‘무간지옥’, ‘잡귀’, ‘고독(蠱毒)’, ‘축귀(逐鬼)’, ‘신벌(神罰)’…. 이 같은 부정적인 종교용어가 그의 가슴에 더 와 닿을 것이다. 또 종교는 부정(不淨)한 것에 민감하다. 따라서 ‘불결하다’, ‘더럽다’, ‘혐오’, ‘구역질’, ‘꺼리다’, ‘추하다’ 같은 감정적인 언어가 중성적인 법률용어보다 더 효과적이다. 만일 그가 믿는 종교에 근거해 적절한 부정적인 단어를 구사한다면 그에게 더 절절하게 와 닿을 것이다.

다음 집회, 다음 언론 기사에서는 보다 다양하고 효과적인 부정적인 종교 언어의 향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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