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1.16 10:02

지금은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사라진 '교련' 수업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탄력붕대로 예쁘게 감던 붕대 감기, 삼각건으로 만들던 지혈과 깁스 방법, 화생방 상황에서의 응급처치, 그리고 조난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 등이다. 그중에서 조난 상황에 대한 교과서 내용이 기억난다. 특히 발의 관리를 강조하는 내용이 있었다. 조난을 당했을 때 오래 걷게 되므로 발을 잘 씻고 양말을 깨끗하게 빨고 잘 말린 후 신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발이 감염되면 생존확률이 낮아진다는 교련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난다.

능력 있는 프리랜서 언니 한 분은 항상 강조한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발부터 씻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라고. 나는 그 말에 소리 없이 웃으면서 하필 '손'이 아닌 '발'부터 씻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발을 가장 아껴야 하는 이유는 손과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몸의 밑바닥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고 내 밑바닥에서 종일 수고한 발을 내려다본다. 곧이어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 한 점 ‘발을 씻는 젊은 여인’을 떠올린다. 여인이 발을 씻는 모습은 지치고 더러워진 하루를 닦아내는 경건한 의식 같다.

Camille Pissarro, ‘Young Woman Bathing Her Feet (also known as The Foot Bath)’, 1895, Oil on canvas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인상주의 그룹의 최연장자였다. 그는 넉넉한 나이만큼이나 마음이 넓고 따뜻해 인상파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피사로는 1874년에 시작되어 1886년까지 이르는 인상파 전시회에 공백 없이 작품을 출품할 정도로 성실한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섬세하고 성실한 마음은 인상주의의 기법을 뚫고 올라와 빛으로 가득한 풍경 가운데 피사로만의 섬세한 감정이 드러났다. 에밀 졸라가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대지의 심원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피사로의 그림은 포근하고 고요한 것이 특징이다. 그가 그린 인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그린 인물에서는 빛의 색채감과 더불어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이 고요한 그림 ‘발을 씻는 젊은 여인’ 안에도 그의 섬세한 시선이 가득하다. 해질녘 붉어진 햇살과 무성한 숲 가운데 흐르는 냇물, 그곳에서 젊은 여인 하나가 홀로 발을 씻고 있다. 어디서 허드렛일이라도 하다가 온 듯 아무렇게나 틀어올린 머리에 흐트러진 작업복 차림이다. 필경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안심하고 소매와 치마를 걷어올린다. 손수건을 꺼내 적시고 발을 문지른다. 여인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종일 무거운 짐을 날랐을 수도 있고, 종종거리며 여기저기에 심부름을 다녔을 수도 있다. 벌써 구두 안은 흙으로 더러워졌는지도 모른다. 땀 냄새가 나서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여자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더러워지고 부어버린 발을 찬물에 담그고 주무른다. 작은 몸부림으로 약간의 피로를 흘려보낸다. 냇물은 맑고 깨끗해 여인의 형상과 주변의 풀숲을 비추고 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빛이 붉게 물들어 어찌나 고운지 여인 하나뿐인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어디에서도 대접받지 못한 노동자가 홀로 발을 씻는 것뿐인데도 그림은 경건하고 특별해진다. 이것은 카미유 피사로의 구도와 색채 능력 덕분이다. 그는 조화로운 구도 가운데 세밀한 터치로 풍부한 빛의 색채감을 그려낸다. 화면의 3분의 1쯤에 여인을 그려넣은 것은 그야말로 황금분할이다.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냇물 역시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화면을 조화롭게 분할한다. 그 형태 위로 빽빽하게 올라붙은 잔터치는 빛을 가득 안은 채 색채의 변화를 이루어낸다.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발은 이 순간 가장 특별한 의식의 주인공이 된다.

세상에는 발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솔선수범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에 띄지 않아도 그들의 노력은 가장 높으며 그들의 피로는 가장 깊다. 어쩌면 발만큼 삶의 무게를 잘 드러내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눈에 띄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인생들을 볼 때면 들뜬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인간의 존엄함을 다시 헤아리게 된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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