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16 16:05

힘이 모이는 곳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정치라는 틀이 만들어진 뒤 힘은 한 군데로 더 모였다. 그런 정치적, 또는 물리적인 힘이 모여 있는 상태나 역량 자체를 우리는 보통 권력(權力)이라고 지칭한다. 그 권력이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범위는 매우 크다.

‘권력’을 이루는 앞의 한자 權(권)은 뜯어 볼 필요가 있다. 나무, 또는 그로 만든 지팡이, 나아가 힘 있는 자리 등을 상징하는 木(목)과 황새나 학 등 큰 새를 가리키는 雚(관)의 합성이다. 초기 글자인 갑골문의 형태를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풀이는 다소 엇갈린다. 그러나 초기 한자의 세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술(呪術) 또는 제례(祭禮)와 연관을 지어 풀어보는 쪽이 더 그럴 듯하다. 이에 따르면 황새 등은 일종의 신조(神鳥)다. 따라서 글자 權(권)은 하늘이 내리는 조짐과 징후, 그를 관장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지팡이의 합성이다.

이로 볼 때 權(권)은 하늘의 조짐과 예시 등을 다루는 자리에 있는 사람, 또는 그런 사람 등이 행사할 수 있는 힘 등을 일컬었던 글자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얻은 새김이 바로 ‘권력’이겠다. 그런 권력에는 두 가지 속성이 담겨 있다.

다른 이에게 나름대로의 기준을 설정하는 역량, 그 반대로 제 맘껏 뭔가를 꾸미고 벌이는 임의(任意)와 자의(恣意)의 성질이다. 앞의 경우에는 ‘원칙’ ‘기준’ 등의 새김을 얻었다. 그로써 번진 단어가 권형(權衡)이다. 무게를 다는 저울추와 저울대다. 권도(權度)도 있다. 길이를 재는 자와 함께 일정한 원칙과 기준을 가리킨다.

임의성과 자의성이 번져 만들어진 단어는 권변(權變), 권술(權術), 권의(權宜) 등이다. 원칙과 기준에서 벗어나 옆 또는 뒤로 돌아가는 방편(方便)과 변칙(變則)을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따라서 한자 權(권)에는 기준과 원칙의 의미, 그 반대인 임의성과 자의성이라는 뜻이 다 담겨 있다.

세속의 권력이 지니는 단면을 잘 말해주는 대목일지 모른다. 기준과 원칙을 설정해 남들에게 이를 따르도록 하는 힘, 다른 한편으로는 제 뜻대로 번져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는 성질 말이다. 따라서 권력을 쥔 사람의 소양과 식견, 자질 등은 늘 중요하다.

제가 손에 쥔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면서 세상이 그에게 부여한 틀을 넘어설 때 항상 문제는 크게 도지는 법이다. 전권(專權)이라는 말이 그에 해당한다. 권력을 제 뜻대로만 행사하는 경우다. 월권(越權) 또한 그렇다. 정해진 범주를 마구 넘어서는 경우다.

농권(弄權)도 그와 비슷한 행위다.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일이다. 천권(擅權)도 같은 맥락이다. 제 멋대로 구는 행위를 가리키는 擅(천)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호권(怙權)이라는 옛 단어도 있다. 권력에 기대 거리낄 것 없이 구는 행위다.

독람대권(獨攬大權)은 성어 식 표현이다. 혼자 큰 권력을 전횡(專橫)하는 행위다. 그렇게 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일이 專權誤國(전권오국)이다. 심한 상황은 권력도 잃고 나라를 욕되게 만드는 喪權辱國(상권욕국)이다. 권력자가 제 힘을 오용(誤用)하고 남용(濫用)해서 자주 생겼던 일이라 다 성어로 남았다.

주목하고 싶은 성어가 하나 더 있다. 人微權輕(인미권경)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온 성어다. ‘사람이 미천하면 권력도 가볍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태적(動態的)인 풀이를 덧붙이고 싶다. ‘사람이 보잘 것 없어지면 권력도 가벼워진다’는 식으로 말이다. 누가 새겨들어야 좋을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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