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1.13 16:31

 

‘차가워진 날(寒)의 매미(蟬)’라는 뜻이다. 만물의 기운이 왕성하게 자라나는 여름을 역시 왕성한 울음소리로 채우는 녀석이 매미인데, 놈들은 공기가 차가워지는 가을 무렵이면 울음소리가 완연하게 줄어든다. 가을은 아마도, 이 매미들이 울려대는 소리와 함께 오는가보다. 

요즘 가을이 길에 밟히기 시작한다. 처서가 지나면서 먼 하늘 자락을 떠돌기만 하던 가을의 기운이 엊그제 대지를 적신 비로 인해 길에 내려앉아 그 위를 부지런히 다니는 사람들의 발  아래 조용히 몸을 묻는다. 

더위 지나면 차가움이 온다고 했다. 한자로 적으면 서왕한래(暑往寒來), 또는 한래서왕(寒來暑往)이다. 더위가 가서 추위가 오는 것인지, 아니면 추위가 다가와 더위가 몸을 비키는 것인지는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가는 것이 있으면 앞에서 다가오는 그 무엇이 있다. 세상은 오고 가는 것의 갈마듦이라는 현상의 연속이다.   

매미라는 녀석은 추위에 닿아서야 그 왕성했던 여름날의 울음소리를 멈춘다. 더위에 잠 못 들었던 그 많은 여름날의 밤, 사람의 원성을 제법 받았을 매미는 가을에 들어서면서 울음소리를 줄이다가 마침내 쓸쓸함의 정조(情調)까지 읊조린다. 

울음을 멈추면 ‘차가운 날의 매미가 입을 굳게 닫는다’는 뜻의 성어를 쓴다. 噤若寒蟬(금약한선)이다. 입 닫는(噤) 모습이 마치(若) 차가운 날의 매미(寒蟬) 같다는 뜻이다. 그 울음소리가 쓸쓸하게 들리는 것은 寒蟬凄切(한선처절)이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고 슬프게(凄切) 귀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런 매미에 사람들의 엉뚱한 오해가 닥친다. 차가워진 날 울음을 멈추는 매미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도 못하고 비겁하게 입을 닫는 사람’을 풍자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계절이 품은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제 울음소리를 낮춘 매미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가을은 밖으로 번짐보다는 안으로 끌어들임의 계절이다. 곡식과 과일은 가을이 오면 성장의 기운을 멈추고 안으로 더 내밀하게 자신을 숙성시킨다. 그런 점에서 가을은 수렴(收斂)의 계절이다.

매미가 외려 현명할지 모른다. 안으로 착실하게 거두면서 다가올 추위에 대비하는 모습이 미물(微物)로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섭섭하다. 걸핏하면 장외로까지 싸움의 마당을 뻗는 정치판, 숙성과 함축의 계절에 대규모 정치 집회까지 열리는 이 사회의 모습이 그만 못하다. 이 차가운 날씨에 울음 멈춘 매미를 뭐라 나무랄 우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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