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17 17:23

한 때 초등학교, 중등과 고등 교육과정에서 교과의 한 축을 이뤘던 단어가 도덕(道德)이다. 바른 생활 태도와 마음가짐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교과의 한 과정이었다. 그렇지만 “도덕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의 답은 제법 궁색해진다.

단어를 이루는 앞 글자 道(도)는 추상적으로나마 아는 지금 ‘도덕’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길을 가는 사람의 행위인 辶(착)이 등장하고, 이어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首(수)가 보인다. 사람의 몸체는 보이지 않으니 잔인하게 남에 의해 잘린 사람 머리다.

그렇다면 잘린 사람의 머리를 들고 누군가가 길을 간다는 설정이다. 유력한 풀이에 따르면 역시 주술적인 행위란다. 포로 등으로 잡은 사람의 머리를 자른 뒤 이로써 나아갈 곳에 닥칠지 모를 사악한 기운을 누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아무튼 길을 가는 사람, 잘린 사람의 머리가 글자의 요소로 등장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번진 뜻이 가는 길, 가야할 길, 내가 품은 지향(指向) 등이다. 중국 춘추시대 이후 이는 철학적 추상이 덧대지면서 궁극적으로 사람이 나아가야 하는 옳은 길, 진리의 본체, 바르고 마땅한 방법 등의 뜻을 획득했다.

德(덕)이라는 글자 또한 주술적 행위로 푸는 학자들이 있다. 길 또는 길을 가는 행위인 彳(척)이 있고, 사람의 눈을 지칭하는 罒(망), 마음을 가리키는 心(심)이 합쳐져 있다. 초기 글자꼴에서는 사람의 눈이 분명하게 두드러진다. 역시 닥칠지 모를 사악한 기운에 대응하기 위한 관찰력, 예지력 등을 의미하는 글자였다는 풀이가 있다.

이후 德(덕)은 마음의 큰 역량을 지칭하는 글자로 발전했다. 품성이 넉넉한 편이어서 남의 허물을 따져 묻지 않으면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여 큰 조화(調和)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의 마음 역량을 가리키는 글자다. 역시 철학적 의미가 담기면서 매우 수준 높은 사람의 마음가짐, 또는 그 힘을 의미하는 글자로 발전했다.

따라서 ‘도덕’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이렇다. 먼저 도(道)는 전체적인 가리킴, 즉 지향(指向)이자 틀이라고 보면 좋다. 진리와 진실에 이르는 길, 아울러 그를 겨누는 방향타에 해당한다. 사람이 궁극적으로 향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는 의미다.

덕(德)은 그에 비해 그 길로 나아가는 실천적 행위를 가리킨다. 진리와 진실로 나아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쌓고 터득하며, 아울러 실천하는 행위 전반을 지칭한다. 道(도)가 방향타이자 전체를 아우르는 틀이라면, 德(덕)은 그에 닿고자 하는 구체적 지침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도덕’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최고의 규범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도덕은 따라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자 지향이다. 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동양에서는 제대로 사람대접 받기 힘들었다. 이를 문명의 기본적 토대로 간주하면서 그런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는 야만(野蠻)과 금수(禽獸)로 취급했다.

그러나 동양의 엄격하면서도 형식적인 규범일 수도 있다.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규범적이면 오히려 경색(梗塞)함에 치달아 매끄러운 소통을 놓칠 수 있다. 그 점에서 무분별하게 도덕만을 외치는 사람은 외면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뭇사람의 선택을 받아 높은 자리에 오른 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 도덕의 잣대는 매우 중요하다. 일을 해도 명분에 들어맞아야 하고, 행위 전반 또한 공정(公正)함을 잃을 수 없다. 그러지 못한다면 사회 전반에 매우 심각한 해를 미치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적인 업무의 가장 꼭짓점을 구성하는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더 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도덕이다. 그 모든 행위는 명분을 거스르지 말아야 하며, 공정함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 수 없다. 명분에 맞지 않는 행위를 벌였고, 공정함을 스스로 훼손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의 요즘 문제는 바로 그 ‘도덕’의 상실에서 비롯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명분에서 크게 망가졌고, 공정함은 송두리째 놓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때문이다. 검찰의 발표를 지켜보는 것은 맞지만 우선 드러난 여러 정황이 매우 심각한 도덕의 상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정략적 판단으로 마무리할 사안이 아니다. 더 이상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조사한 사실을 신속하게 밝히고, 대통령은 각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난국을 수습하며 자리에서 물러나야 옳다. 대통령이 자리에 연연해 정략적인 카드로만 일관할 경우 대한민국 도덕의 붕괴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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