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1.21 09:15

슬금슬금 겨울이 다가오면 절약은 불가능해진다. 출근할 때마다 핫팩을 하나씩 챙겨 가방에 넣는다. 일교차 심한 날 퇴근 길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게 된다. 장갑을 끼고서도 차가운 손끝을 컵 표면에 얹으면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

몸과 마음이 추운 겨울에는 역시 온기가 제일이다. 여기 온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이 있다. 보는 것만으로 따뜻함이 전해 온다. 피에르 에두아르 프레르의 ‘난로에 불 붙이기’다.

Pierre &#201;douard Fr&#232;re <Lighting the Stove> 1886 (46cmx38cm)

젊은 어머니는 주워 온 잔가지들을 작은 가정용 난로에 집어넣으며 불을 붙이고 있다. 아직 집어넣을 땔감이 많이 남아 있다. 난로 안에는 이제 불붙기 시작한 불꽃이 주홍색을 띠고 있다. 아직 불길이 난로를 데우기는 시간이 더 필요한지 남자아이는 손을 난로에 가져다 대었다. 맨손을 가져다 대고 온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창밖에는 내리는 눈에 가득 덮인 옆집 지붕이 보인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창문에는 서리가 끼어 풍경은 더욱 흐리고 뽀얗게 보인다. 어린 여자아이는 눈으로 인해 구두가 젖은 것인지 구두를 난로 곁에 가져다 대며 시린 발끝을 녹이고 있다. 엄마의 얼굴에는 불꽃이 비치고 있다. 아이의 표정은 기다림에 지루하다. 얼른 난로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표정이다. 웬만한 가구 하나 없이 벽에 걸린 가재도구들은 이 가정의 가난함을 보여 준다. 창문에는 커튼 하나 없다. 바닥에는 카펫 한 장 깔려 있지 않다. 이 추운 방안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이 작은 난로 하나뿐이다. 그러나 놀랍다. 이 난로 하나의 존재만으로 이 그림은 따뜻함으로 가득찬다.

피에르 에두아르 프레르 (Pierre-Édouard Frère, 1819-1886)는 프랑스 혈통으로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다. 태생 파리지엔느로서 에콜 데 보자르에서 그림을 공부했으나 아카데믹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소박한 가족의 일상을 즐겨 그렸고, 특히 아이들의 놀이하는 일상을 즐겨 그린 그의 작품은 놀랍도록 활기가 넘친다.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 근교 에쿠앵의 마을에서 보냈고, 그의 많은 작품들 속에 그곳 풍경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프레르는 젊은 나이에서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노년에는 그 업적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이러한 소박함과 활기는 런던의 미술시장에서 인기를 얻었고, 러스킨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계 인사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프레르는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서 성공했고 영향력 있는 화가가 되었다. 프레르는 차차 영국에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1868년부터 사망하기까지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 정기적으로 초대되었다.

영국의 영향력 있는 미술평론가였던 존 러스킨은 저서 ‘아카데미 노트’에서 어린아이들을 주제로 한 ‘이삭 줍는 소년(1855)’에 대해 “내가 아는 단어들만으로 이 작품에 알맞은 평가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프레르의 색채는 렘브란트를 연상시키며,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 보여주는 깊이감과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의 우아함, 그리고 프라 안젤리코의 성스러움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하나로 응집하고 있는 듯하다”라며 극찬했다.

나 역시 따뜻함을 주제로 한 프레르의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프레르의 그림에는 연출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그는 따뜻하고 생명력 있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따뜻함, 그것은 어쩌면 인생의 모든 것이다. 함께 있으면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의 아름다운 순간이 또 있을까. 따뜻함을 나누는 순간을 포착한 프레르의 그림은, 순간의 아름다움이 삶 가운데 늘 스며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한 순간이 있기에 삶은 계속될 수 있다.

추위가 극심할 것이라는 이번 겨울, 에두아르 프레르의 그림처럼 가슴에 난로 하나 간직할 수 있기를. 그래서 온기 넘치는 따뜻한 순간들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따뜻함' 그것은 적어도 겨울의 모든 것이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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