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18 17:49

듣는 이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이 단어 체포(逮捕)는 어딘가 으스스하다. 사법기관 등이 법률적인 절차를 집행하기 위해 먼저 벌이는 행위다. 규정으로는 그렇지만, 범법 또는 위법(違法)의 구석을 지닌 사람에게는 언젠가 닥칠 사법의 칼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어려운 한자로 이뤄져 있지만 순우리말로 옮기면 ‘붙잡다’다.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나 사람이 범법과 위법의 혐의를 지닌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는 일이다. 그로써 사법적인 절차가 차례대로 펼쳐진다. 따라서 체포는 피의자와 법률이 실질적으로 접촉하는 첫 고리에 해당한다.

단어를 이루는 글자의 앞은 逮(체)다. 걷거나 뛰는 행위를 가리키는 辶(착)과 隶(이)라는 글자의 합성이다. 이 두 요소 중 뒤의 隶(이)는 손으로 동물의 꼬리 등을 잡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본다. 따라서 걷거나 뛰어서 동물을 잡는 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로써 나온 뜻이 ‘붙잡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에) 이르다’ ‘미치다’일 테다.

뒤의 글자 捕(포)는 우선 손을 가리키는 扌(수)와 甫(보)의 합성이다. 뒤의 甫(보)는 곡식과 과일 등 과실을 보자기에 담는 행위를 표현한 글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손(扌)이 그에 가세하면서 이 글자는 무엇인가를 붙잡다, 움켜잡다 등의 의미를 획득한 것으로 본다.

“세금을 포탈했다”고 할 때의 ‘포탈’은 한자로 逋脫이다. 걷거나 뛰는 행위를 의미하는 辶(착)과 甫(보)가 합쳤으니 물건을 담아 묶은 보따리 등을 누군가 들고서 걷거나 뛰어 도망치는 행위다. 세금을 들어먹고 튀는 사람의 행위를 포탈(逋脫)로 적었으니 매우 타당하다.

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속속 체포해 사법의 테두리 안에 가두는 일이 요즘 세간의 큰 화제다. 최 여인의 조카라는 젊은 여성도 이런 체포의 대열에 오르면서 또 주목을 받고 있다. 공정하고 엄정한 사법의 칼날로 이들을 단죄하는 일이 시급하다.

수사를 맡은 과거 조선의 기관이 포도청(捕盜廳)이다. 남의 물건을 슬쩍 훔쳐서 제 것으로 챙기는 자가 도둑이다. 그런 도둑을 붙잡아 들이는 기관이라는 엮음이다. 국가의 예산을 제 주머니에 마구 집어넣었으니 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함으로써 대한민국 ‘포도청’의 체포 리스트에 오른 이는 도둑 그 자체거나 적어도 그를 방조한 인물들이다.

대통령이 이들의 행위를 묵인하거나 도운 혐의가 짙다. 그러나 국가 원수인 대통령을 냉큼 체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저 혐의가 사실인지 정말 알고 싶을 뿐이다. 대통령 스스로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테다. 혐의는 곧 밝혀지겠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생겨난 충격은 거대하다. 대한민국의 국기(國基)가 흔들렸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책임은 아주 크다. 혐의의 규명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점이 사실은 더 중요하다. 직접 돕거나 지시하지는 않았더라도 대통령은 이들을 발탁하거나 곁에 둠으로써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지녀야 할 막중한 도덕적 타당성을 이미 잃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는 이를 무시할 태세다. 임기를 마칠 때까지 대통령은 그 자리에 옳게 서서 한국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대통령이 그런 도덕적 명분에 합당한 인물일까. 국민들은 이 점을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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