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7.01.09 09:00

[1부 새로운 사회- 혈연·지연·학연 등 특정집단서 발아하는 족벌주의 없애야]

[뉴스웍스=김벼리기자] 한정적 자원과 무한한 욕망. 이 딜레마는 곧 인간 역사의 원동력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이들과 무리를 짓는 동시에 다른 무리를 배제하는 메커니즘을 익혀왔다. 그중에서도 ‘물보다 진한 피’의 결합, 즉 ‘족벌주의’는 무리짓기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다.

이처럼 인류 초기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체득한 것이라 하지만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태에서도 드러나듯 현대에 와서 족벌주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악의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정 소수 집단끼리 ‘다 해먹는’ 시스템에서 온갖 비리, 부정부패 등 사회를 갉아먹는 현상이 발아하는 것이다.

◆정치, 관료, 법조계…사회 곳곳에 도사리는 족벌주의

우선 ‘최순실 게이트’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 정치권에서의 족벌주의는 만연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최순실 씨와 그의 측근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무지막지한 이익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국정을 좌우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과정에서 여론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들끓고 있다.

비록 이번 사태가 ‘사상 초유’라는 수식도 부족할 만큼 이례적이긴 하지만 정치권에서 족벌주의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 인맥,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산·경남(PK),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이 그 중심에 있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386 코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부동산·자산가)', '영포라인(경북 영일·포항)' 등으로 잡음이 일었다.

관료사회에서 족벌주의는 ‘낙하산 인사’ 문제로 불거져왔다. 이번 박근혜 정권의 경우 영남권, 특히 대구·경북(TK) 인사의 공공기간 ‘꽂아주기’가 두드러졌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내 32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상임감사 414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TK와 PK를 합친 영남권 출신 인사는 모두 159명이었다. 전체의 3분의 1을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호남 출신 인사는 14.3%에 그쳤다.

법조계도 별반다르지 않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해외 원정 도박 사건이 대표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당시 재판부와의 친분을 내세우며 정씨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도 검찰 수사를 무마하는 대가로 정씨에게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족벌주의 없애려면…인식 전환과 제도 정비 병행해야

그렇다면 ‘악의 축’ 족벌주의를 없애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앞서 살폈듯 족벌주의는 다만 몇몇 영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 구조적으로 병폐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결코 본질적인 해결이 될 순 없다.

다소 원론적일지라도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 및 이를 위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혈연, 돈, 명예 등을 중심으로 맺는 인간관계의 허무함을 강조, 생각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폐쇄적이고 고착화된 관계 대신 개방적이고 유기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족벌주의 해체를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인식 변화와 발맞춰 법·제도적인 정비도 필수다. 상징적 차원에서 그 출발점은 ‘차별금지법’이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등 신체조건 및 기혼, 미혼, 동거 등을 차별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이를 근거로 고용이나 교육기관 입학 등에서 그 누구도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정 개인 및 집단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도 ‘차별금지법’에 담겨있다.

미국, 독일, 영국 등은 이미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손해배상 및 형사처벌까지 한다.

그러나 지난 2007년, 2010년, 2013년 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을 추진할 때마다 종교 단체의 거센 항의로 무산됐다. 지난 2013년 김한길 전 민주통합당 의원 등 국회의원 51명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또한 반대에 밀려 2014년 철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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