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12.23 09:00

[제1부 새로운 사회 - 공정성 바로세워 신뢰사회 만들어야]

[뉴스웍스=김벼리기자] 촛불과 분노로 뒤섞인 대한민국의 밤이 나날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지난 12일 3차 민중 총궐기에는 100만명이 모여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운집’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번 집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젊은층, 특히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학점기계’, ‘수능충’ 등 사회문제보다는 눈앞에 닥친 문제에만 급급하다는 비아냥을 받고 있는 ‘요즘’ 학생들을 이렇게 학교 밖으로 내몬 원인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금이 갔다는 인식이다. '죽어라' 노력만 한다면 최소한 자신의 삶만은 풍족해질 수 있다는 희망, 이를 위한 공정한 룰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무너진 공정성과 함께 부정부패에 대한 소외감도 사회적 불만으로 작용하며 거리로 나오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일부 사회 구성원이 권한과 영향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사회질서에 반하는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눈뜨고는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이다. 

◆ 무너진 ‘공정성’

이처럼 공정성 문제가 가장 예민한 분야는 교육이다. 흔한 ‘달리기 비유’가 그렇듯 어떤 조건, 환경에서라도 모든 이들은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교육 시스템의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최근 ‘최순실 게이트’의 사실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신뢰는 철저히 무너졌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는 청담고 재학 당시 승마협회 공문을 근거로 과도한 ‘공결’처리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수행평가 태도점수에서 만점을 받고 교과우수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정씨가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정씨보다 앞선 두 명의 면접 점수를 낮추면서까지 특혜를 받았다. 입학 뒤에도 그는 1년 넘게 단 한 차례도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대체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출석을 인정받았다. 심지어 정씨 대신 교수가 직접 과제물을 작성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공정성의 신뢰가 깨진 분야는 교육만이 아니었다. 지난 7일 ‘조선일보’ 1면에는 횡령·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사 안에서 웃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이 올라갔다. 바로 옆에서 검사와 검찰 직원은 공손히 서서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대상이 누구든 법과 정의만을 좇아 공명정대한 수사를 해야 하는 검찰이 앞서 자신을 쥐락펴락했던 우 전 수석의 위세에 눌려있는 모습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 신뢰사회로 도약하기 위하여

그렇다면 걷잡을 수 없이 훼손된 공정성을 회복하고 한국이 ‘신뢰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근본이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일관되고 공정한 룰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윤리적 준거를 체화해야 한다. 또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데도 인식을 같이 해야 한다. 끊임없이 사회의 규칙이 정당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특정 소수에게만 유리한 건 아닌지 등을 경계, 의심하고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 바로잡을 수 있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 앞서 살폈듯 교육은 공정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정유라의 사례가 보여주듯 교육에서 공정성을 상실하면 사회 전체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반대로 교육 시스템에서만 공정함이 바로 설 수 있다면 ‘돈 있고 빽 있다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이들의 노력을 무산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는 곧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의 공정함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공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에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 그렇게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쌓음으로써 계층간 대립, 불화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에 더해 최근 급변하는 산업구조에 맞춘 평생교육시스템을 만들어 끊임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관련 전문가는 “공정성은 곧 사회를 향한 신뢰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원활한 흐름을 좌우한다. 달리 말해 아무리 한국이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대한 신뢰, 즉 공정성이 부재한다면 곳곳에서 흐름이 막히고 말 것이다. 이는 비유컨대 한국 사회가 ‘동맥경화’에 걸리게 되는 것”이라며 “그만큼 중요한 공정성이니 만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