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동우기자
  • 입력 2016.12.29 09:33

[제1부 새로운 사회 -중장기적 관점에서 제대로된 대책 마련해야]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1. 한국과 일본은 지난 23일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비공개로 체결했다. 양국이 협정을 맺기로한지 27일만이다. 2.지난 이명박정권에서 추진됐던 4대강사업으로인해 서울 성상대교 주변 한강까지 녹조로인해 죽은 물고기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3.주한미군의 사드 미사일 배치역시 사전 타당성검사나 국민과 소통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한 예다. 4.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건설 후 석촌호수에 물이 15만톤정도 감소했다. 지난 2012년이후 석촌호수 주변 씽크홀 현상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사진=DB>

[뉴스웍스=김동우기자] 한국의 ‘조급증’은 압축성장 시대의 산물이다. 한국은 ‘빨리빨리’ 가난을 벗어나야했고 사람 말고는 별 다른 자원이 없어 쉬지 않고 일해서 단기간에 성과를 거둬야 했다.

압축성장 시절 조급증은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조급증은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반세기만에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자연히 국민의 삶도 ‘빨리빨리’에 맞춰져갔고 고착화됐다. 

경제성장의 대외지표는 어느덧 ‘근면성실한 한국인’이라는 브랜드를 달아줬고 ‘빨리빨리’는 하나의 미덕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 조급증이 만연한 사회

그러나 뭐든지 너무 서두르면 역효과가 나기 마련이다.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세월호 침몰 등은 한국 조급증의 어두운 그림자다. ‘가장 빠르고, 가장 저렴하게’ 건설됐다던 경부고속도로는 유지보수비가 공사비의 몇 배가 넘는 날림 공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외신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출시를 한 달 앞당겼던 ‘갤럭시노트7’은 촉박한 일정 탓에 품질 테스트를 충분히 진행하지 못했고, 결국 배터리 발화논란이 일어나면서 단종됐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봤고 그보다 더욱 심대한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2008년에 전소된 국보 1호 숭례문의 복원 기간을 놓고도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3년 안의 빠른 복원’을 언급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사안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성찰보다는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음을 새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조급증은 필연적으로 부실과 사고를 수반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13.6%로 OECD 평균에 비해 5~7배 가량 높다. 아직도 수많은 산업현장의 근로자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빨리빨리’ 구호 속에 소중한 생명과 건강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 단기실적주의

부실공사의 이면에는 단기실적주의가 있다. 5년마다 정부가 바뀌고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다보니 절차를 서두르게 되고 부실공사를 남발한다. 내실이야 어떻든 가시적인 성과만 내자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중임제에 대한 개헌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부분과 연관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4대강 정비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은 수해방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핑계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처음부터 제외시켰으며 환경영향평가와 구간에 매장된 문화유적을 조사하는 문화재조사도 한 달 만에 이뤄지는 등 부실하게 진행됐다.

청계천 복원 사업에 소요된 시간이 2년이다. 자신의 빛나는 업적을 임기중에 마무리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가장 크다는 강들을 5년 안에 공사하려다 보니 졸속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4대강은 부실공사, 환경오염 등의 논란이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마찬가지다. 국민 정서적으로 민감한 한일관계에 대한 사안을 공론화 과정도 일체 없이 강행처리했다. 재협상 시작 후 한 달도 안됐다.

◆ 정부‧기업 정책도 오락가락

정부정책도 백년대계는 커녕 십년대계도 없다. 경제정책도 너무 냉탕온탕이다. 부동산정책은 10년 주기로 규제책과 촉진책이 반복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았다. 연 단위로 정책이 오락가락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기업들도 제품 설계에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장기보다는 단기 위주다. 그러다 보니 트렌드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는 직함까지 달았다. 주식시장에서 단기투자, 속칭 단타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바로 조급증 때문이다.

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단기성과에 집착해 큰 의미가 없는 SCI(과학논문인용색인) 논문 수에 매달려 피인용률이 형편없는 논문을 양산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한 기초과학 프로젝트는 기피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노벨상 수상자 수 '0'가 말해준다.

◆ 늦더라도 확실한 대책 강구해야

한국을 빨리빨리 모드로 내몬 패스트푸드의 본 고장이 언젠가부터 우리가 버린 가치를 재평가하고 포장해 역수출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회는 쉽게 지치고 각박해진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의 삶에는 여유가 없다.

조급증의 이면에는 현재에 대한 불안감이 담겨 있다. 이제 우리도 조급증에서 파생된 모순과 오류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고속성장의 그늘에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국가의 균형성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조건 느리게 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소 늦어지더라도 차제에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대책은 한국만의 강점은 살리고 사회경제구조와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글로벌 트렌드를 이끌어갈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개혁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서두르다 보면 꼭 챙겨야 할 것들을 간과할 수 있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와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가 한단계 더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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