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23 15:48

어느 한 집단의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에 영수(領袖)가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자주 쓰지는 않지만 한 때 버젓이 쓰였던 말이다. 중국에서는 ‘정상회담’ 등을 거론할 때 이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옷깃을 일컫는 領(령)과 소매를 가리키는 袖(수)의 합성이다. 그냥 옷깃이라고 할 수는 없고 눈에 잘 띄는 목 부위의 옷깃을 지칭한다. 옷을 이루는 옷감과는 다른 색깔의 천으로 대는 곳이 옷깃이다. 그 중에서도 목 주변에 걸쳐 대는 옷깃은 사람들 눈에 특히 잘 띈다.

소매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은 말을 할 때 손을 자주 움직이다. 그냥 가만히 있더라도 상대의 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 소매다. 말을 하면서 손의 동작까지 덧붙여질 때 그 소매는 더 할 나위 없이 사람들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영수(領袖)라는 단어는 따라서 옷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 굳이 이를테면 ‘대표성’이 머무는 곳이다. 또한 남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의표(儀表)라는 의미도 얻었다. 따라서 영수라는 낱말은 지도자, 일정한 집단의 표준이나 기준 등의 뜻도 획득했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글자는 領(령)이다. 가운데 핵심의 줄기를 일컫는 統(통)이라는 글자를 앞에 붙이면 통령(統領)이다. 모든 것을 이끄는 행위, 또는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 앞에 크다는 뜻의 大(대)를 덧붙이면 바로 대통령(大統領)이다.

중국에서는 앞에 서서 무리를 이끄는 사람을 영도(領導)라고 적는다. 옷깃에서 발전한 領(령)이라는 글자의 새김이 ‘이끌다’ ‘거느리다’로 진화해 확실히 자리를 잡은 꼴이다. 뒤의 글자 導(도) 또한 같은 맥락이다. 영솔(領率)이라는 낱말 또한 마찬가지다. 남을 이끌어 가는 행위 또는 그런 사람이다.

다 옷차림에서 나온 말이다. 그 만큼 옷차림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사람의 성정이나 자질, 품성과 능력 등이 엿보였던 까닭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의관(衣冠)을 중시했던 듯하다. 몸에 걸치는 옷(衣), 그리고 머리에 얹는 모자(冠) 말이다.

그런 옷매무새는 사람의 능력과 자질, 성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의관이 바르지 못하면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고 치부한 옛 동양 지식사회의 전통은 그에서 비롯했을 테다. 따라서 복식을 수식하는 한자 낱말과 성어들은 제법 많이 발달한 편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뒤 고향에 돌아가는 일을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고 표현한 것도 성공의 의미를 옷에 둔 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그 만큼 옷차림은 과거 동양사회에서 단순한 겉치레에 국한하는 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의관이 버젓하지 못하면 제대로 대접받기 힘들었던 분위기다. 그래서 남루(襤褸)라는 낱말은 혐오의 대상이다. 누더기와 같은 옷차림을 일컫는 단어다. ‘궁상(窮狀)맞다’라는 말 또한 일정 부분 옷차림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볼 품 없다’ ‘초라하다’도 그와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옷깃이 구겨지고, 소매가 얼룩졌으니 요즘 문제다. 영수(領袖)의 의관(儀觀)이 망가져 대통령(大統領)의 직함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옷차림 자체가 남루함을 띠어가고 있으니 사정은 더 그렇다. 영(令)마저 서지 않을 낌새다. 초라하며 볼 품 없는 지경으로 간다. 이러다 궁상까지 낄 태세다. 대통령에 그치지 않아 문제다. 우리사회 전체가 그런 비탈길에 접어든 느낌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