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안나기자
  • 입력 2015.11.15 15:33
13일(현지시간) 파리시내 바타칼랑극장앞에서 구조대원들이 사상자들을 수습하고 있다.<사진=유튜브캡쳐>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파리 테러가 가뜩이나 부진에 빠진 글로벌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다. 

지난 2001년 세계 경제의 중심 뉴욕에서 벌어진 9·11 테러는 오랫동안 지속된 미국 경제의 호황이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이후 부침을 거듭해온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까지 겪으며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계 주요국 정부들이 양적완화 정책을 펴며 경기를 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성장률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디플레이션 암운은 여전히 짙다. 이런 가운데 9·11을 연상케 하는 테러가 유럽의 중심부 파리에서 벌어졌다. 

유럽발 경제 충격파, 중국 비롯한 세계 경제에 타격

테러가 벌어지기 하루 전인 12일(현지시간)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경제위원회에 참석해 추가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저유가와 저조한 세계 경제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이 호전되는 신호가 약해졌다"며 "우리의 중단기 물가안정 목표치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다른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CB는 올 3월부터 시작해 내년 9월까지 18개월에 걸쳐 매달 600억유로(650억달러 규모), 총 1조3,00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하기로 했는데, 드라기 총재의 발언은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내년 9월 이후에도 연장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처럼 유럽은 정부의 지속적인 돈 풀기에도 그다지 개선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유로존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0.0%에 머물고 있다. 유로스타트가 발표한 유로존의 3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전분기보다 0.3%늘어난 것으로 집계돼 2분기의 0.4%에 비해 오히려 낮아졌다. 그나마 프랑스는 소비자지출 규모가 늘면서 3분기 성장률이 0.3%로 지난 분기의 0.0%보다 소폭 올랐다. 

그러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벌어지면 소비심리는 얼어붙기 마련이다. 사싱상 디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되는 유럽 경제에 민간의 소비가 더 줄어들게 되면 정부가 재정을 더 쏟아붓는다고 해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유럽 시장이 얼어붙으면 유럽 수출 규모가 큰 중국 경제도 타격을 입게 된다. 중국의 최대 교역국은 EU인데, 유럽 수출이 줄면 가뜩이나 경기둔화로 불안한 모습의 중국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중국에 원자재 및 각종 물품을 수출하던 미국과 일본, 신흥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변화하는 난민 정책도 유럽 경제 회복에 찬 물

이번 테러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난민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최근 EU집행위가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난민 유입이 EU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난민 유입이 2017년에 EU의 GDP를 0.2∼0.3%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주민에 대한 반감과 난민 사태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완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테러로 유럽의 반 난민 정서는 더욱 고조되고 정치적 긴장이 팽팽해질 전망이다. 당장 다음달 16일 치러질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선전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 유럽이 난민문제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각국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극우나 우파 정당들이 연이어 승리를 거머쥐고 있다. 앞으로 유럽에서 난민을 거부하는 정책들이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러는 경제에 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

미국의 다우지수는 9·11테러가 일어나기 전날 9,606포인트로 마감했으나 이후 21일에는 장중 8,062까지 떨어지며 16% 폭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우지수는 서서히 회복하며 3개월만에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주식시장에 미친 영향은 단기적이었지만 미국 경제는 사실상 9·11 테러를 겪으며 장기호황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90년대 미국 경제는 양호한 경제성장률 속에 낮은 물가 상승률을 유지하는 '골디락스 경제'를 누렸다. 90년대말에는 IT기업들이 탄생하며 미국의 경제성장은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다. 장기 호황 덕에 빌 클린턴 행정부는 대규모 재정흑자를 일궈냈다.  

테러가 발생한 2001년은 닷컴 버블이 경고음을 내던 시기였다. 기업들의 건전성이 취약한 가운데 테러로 인한 불안감은 기업가치의 하락을 가져왔다.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감세로 대응했다. 테러와의 전쟁까지 펼치며 탄탄했던 미국 재정은 적자로 돌아섰다. 테러 이후 미국이 1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쏟은 직접적인 전쟁 비용만 1조2,830억달러에 이른다. 2015년 기준 미국의 재정적자는 4,390억달러로 GDP의 2.5%에 달한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당시 장기호황 시절 채워뒀던 재정이 넉넉하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계 경제의 상황은 그 때와 정반대다. 미국과 유럽은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 몇년간 돈을 풀면서 재정건전성이 취약해진 상황이다. 

각국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 경제는 더 깊은 불황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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