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정
  • 입력 2016.11.28 09:51

삶의 부피는 작은 일에도 쉽게 손상받는 벽돌 같고 삶의 뼈대는 웬만한 일에는 무너지지 않는 철근 같다. 그러나 번번이 실망하는 일이 생기고 ‘삼진아웃’을 당하면 때때로 뼈대마저도 휘청거린다. 가장 깊은 내면까지 다치는 일이 없을 리 없고, 그럴 때 심각하게 무너진 외벽과 휘어버린 뼈대를 보수하는 처방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재건축하는 기간이 있으며 삶을 재건축하기 위한 동력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그때 동력이 부족하면 재건축의 작업은 힘들어진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애정, 사랑받고 격려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력이 필요하고 애정과 격려가 필요한 이에게 현대 추상화가의 시조인 파울 클레의 작품 중에서 하트(♥)가 눈에 띄는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클레가 그린 하트 그림은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하트의 퀸’이라는 작품은 유난히도 하트가 붉다.

Paul Klee <Queen of Hearts Herzdame> 1922

트럼프 카드에 등장하는 하트의 여왕은 냉정하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여기 클레의 여왕은 방실방실 웃고 있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큰 눈과 경계 없는 웃음은 가슴에 열린 붉은 하트의 조건 없음을 더욱 강조한다. 심지어 그 착한 얼굴마저도 하트 모양이다. 머리 뒤로 늘어진 붉은 두건은 분홍빛 하트의 얼굴을 강조한다. 자신감 있게 어깨를 열고 허리에 손을 얹는다. "모든 하트는 내 것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어" 꼭 그런 자신감을 뿜어내는 것 같다.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재능도 있어 실제로 바이올린 연주 실력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의 이러한 음악성은 21세에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작품 안에 리듬감을 불어넣는 데 영향을 미친다. 스위스 출신인 그는 1898년부터 독일 뮌헨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 곧 1911년 칸딘스키, 마르크를 만나면서 ‘청기사파’에 발을 담갔다. 그 역시 칸딘스키처럼 색채에 매료되었고 1914년 아프리카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색채에 눈을 떴으며 이어 그 특유의 천진한 추상화로 전진하였다. 이후 클레는 미술사의 유명 디자인학교 바우하우스 교수가 된다.

그는 자연스럽게 본능에 따른다. 그는 악보 위에 음표를 배열하듯이 정확한 색채를 구성했다. 리듬과 무늬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색이 조화롭게 분포되는 그림을 그렸고, 그 과정에서 특유의 천진하고 환상적인 추상화를 더욱 발전시켰다. 구상화(구체적인 형상이 있는 그림)도 완전 추상화(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그림)도 아닌 클레의 작품은 독자적이었다.

1933년까지 독일에 머물렀지만 나치의 존재는 그를 진저리 치게 했다. 나치는 정치적인 성향이 다른 클레를 괴롭혔고 그를 유대인으로 몰아 바우하우스에서 쫓아냈다. 클레는 102점의 작품을 몰수당한 후 “독일은 이르는 곳마다 시체 냄새가 난다”는 말을 남긴 채 스위스로 훌쩍 떠나버렸다.

클레의 작업 방식은 꼭 재건축 같다. 벽돌을 쌓고 타일을 끼우듯 균질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중요한 부분은 강조한다. 그는 캔버스 위에 선들을 꽉 차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선들 위에 색다른 형상을 그려 강조함으로써 시선의 조화를 깨트린다. 그러한 구성은 화면에 리듬감을 살리는 효과를 자아낸다. 화면은 균질한 부분과 강조된 부분이 어우러지면서 시선이 집중되고 사라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강조된 부분이 바로 이 여왕의 심장, 하트다. 그렇게 면적 구성이 강조된 것이 클레의 그림이지만 이 그림에서의 면들은 내게 벽돌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때의 나는 항상 타인의 애정을 빌어 나를 재건축해 왔다. 그래서 동력은 늘 부족했고 보수하는 기간은 길었으며 결핍 가득한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 자신의 애정으로 나를 보수하고 재건축한다. 나의 정확한 결핍을 파악하고 충분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이는 나 자신밖에 없다. 정확히 보수할 부분에 정확한 동력을 붓는다. 하트 여왕의 따뜻하고 거칠 것 없는 얼굴을 빌려 온다. 바닥나지 않는 애정을 믿는다.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사랑하기를. 내 인생을 재건축하는 가장 강한 동력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온다.

글쓴이☞ 선화예고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 소묘를 강의했고, 지금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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