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1.28 13:50

‘으뜸’이자 ‘머리’를 가리키는 元(원)이라는 글자에 ‘늙음’ ‘노인’이라는 의미의 老(로)가 합쳐져 이룬 단어 원로(元老)다. 가장 ‘비중’이 큰 경험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 비중은 대개 정치적인 면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원로라는 단어가 특히 그렇다.

원래 이 단어는 중국 땅에 들어선 왕조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皇帝), 즉 천자(天子)의 늙은 대신을 가리켰다고 한다. 천자는 비록 하늘 아래 최고의 권력을 쥔 사람이기는 하지만 세상살이의 경험에서 나이가 든 대신 등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천자에게 천하를 경략하는 데 필요한 경험이나 교훈 등을 전하는 사람들이 원로 그룹이었을 테다.

나이가 들어 늙었음은 때로 ‘하찮은 존재’와 동급일 수도 있지만, 어려움을 당했을 때 사람이 귀중한 경험을 들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의미로 변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이 들어 세상살이의 고귀한 경험과 교훈을 지닌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배움을 청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 나이 든 사람들을 공경하고 모시는 일이 경로(敬老)다. 우리 지하철 1호선 역 가운데 구로(九老)라는 곳이 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자신의 나이 든 친구 여덟과 함께 거주지 낙양(洛陽)의 향산(香山)이라는 곳에 모여 말년을 함께 보낸 데서 나온 이름이다. 백거이까지 포함한 아홉 노인네, 즉 九老(구로)의 동호회 활동을 가리켰던 말이다.

그 ‘구로’라는 말은 이후 동양에서 인생말년의 느긋한 노인네 삶, 나아가 경로의 마음을 담은 단어로 발전했다. 노인의 삶속에 새겨진 인생의 교훈 등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그를 본받아 인생의 길에 닥치는 많은 풍파를 헤쳐가자는 의미도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만장한 중국의 역사무대에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지향을 실천에 옮겨 큰 성공을 거둔 군주다. 그가 자신의 정치적 명 파트너였던 관중(管仲)과 함께 원정(遠征)을 떠난 적이 있다. 북방의 사막, 아니면 적어도 황무지를 거쳐야 했던 여정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런 황무지에서 제 환공의 군대는 길을 잃는다. 막막한 땅, 일정한 표지도 없는 곳에서 길을 잃었으니 큰일이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좋을까. 관중은 이 때 적절한 제안을 하나 낸다. “늙은 말이 길을 알 수 있으니 풀어 놓아보자”는 내용이었다.

경험 많은 말이었다. 멀찌감치 풀어 놓으니 이 늙은 말이 길을 찾아간다. 물이 있는 곳을 알겠고, 사람 사는 곳을 또 알았겠다. 제 환공의 군대는 그 늙은 말을 좇아갔다. 결국 늙은 말의 행적을 좇아 제나라 환공의 군대는 무사히 그 막막한 황무지를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성어 ‘늙은 말이 길을 안다’는 내용의 老馬識途(노마식도)가 나온 유래다. 길을 찾을 수 없이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사람이 직접 겪은 경험의 깊이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리는 말이다. 나이 든 이를 무시하지 않고 그를 존중하며, 그로부터 배우고 새기려는 인류사회의 관행은 이와 관련이 있다.

정계의 원로 20명이 모여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빚어진 난국의 타개 방안을 제시했다. 대통령의 무능으로 벌어진 사태의 심각성이 이미 깊은 수준에 달한 시점에 나온 원로들의 제안이라 상당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대통령 하야에 이은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청와대는 이미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여야는 제 눈앞의 이익만을 저울질함으로써 신뢰를 또한 잃은 시점이다. 대통령은 시한을 설정해 하야키로 약속한 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정파적 이익을 떠나 국난을 타개한다는 취지에서 모여 내놓은 원로들의 제안을 대통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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